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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江山
작성일 2013/06/01 (토)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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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6 군사 정변과 제3공화국


살아있는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

5·16 군사 정변과 제3공화국

5·16 군사 정변과 제3공화국 본문 이미지 1

쿠데타, 군대가 민주 정부를 무너뜨리다

1961년 5월 16일, 해병 1여단 소속 군인들이 한강 대교에 나타났다. 해병대는 자신들을 막아선 헌병대를 향해 무차별 총격을 퍼부었다. 반란을 일으킨 군대는 정부 주요 기관과 방송국을 장악한 뒤, 자신들이 국가를 운영하겠다고 나섰다.

친애하는 애국 동포 여러분! 은인 자중하던 군부는 드디어 오늘 새벽을 기해서 일제히 행동을 개시하여 국가의 행정·입법·사법의 3권을 완전히 장악하고 이어 군사 혁명 위원회를 조직하였습니다.
- 5·16 혁명 제일성, 1961. 5. 16.

5월 19일, 군인들은 장관, 시장과 도지사를 비롯한 정부 주요 기관의 책임자를 모두 군인으로 대체하고, 군인들이 중심이 된 국가 재건 최고 회의(최고 회의)가 국기 기관의 역할을 대신한다고 선언하였다. 군사 정부가 출현한 것이다.

쿠데타의 주역은 최고 회의 의장을 맡게 된 박정희 소장과, 중앙 정보부를 창설하여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게 될 김종필 중령이었다. 이들은 "반공을 국시의 제1의로 삼고 반공 체제를 재정비 강화한다." 등의 혁명 공약을 내세우며, 북한과의 평화 협상을 주장했던 2,100여 명의 통일 운동 세력들을 체포하였다. 구호·학술·종교 단체를 제외한 모든 정당과 사회 단체를 해산시켰으며, 국회를 해산하고 일체의 정치 활동을 금지시켰다. 1,170종의 신문과 잡지도 강제로 폐간시켰다.

제3공화국 - 박정희 정권이 탄생하다

쿠데타 주역들은 "2년 뒤 양심적인 정치인들에게 정권을 이양하고 군에 복귀하겠다."고 약속하였으며, 박정희도 대통령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여러 차례 약속하였다. 그러나 이들은 쿠데타 직후부터 비밀리에 정당(민주 공화당=공화당)을 조직하고, 정치 자금을 모으는 등 권력을 잡을 준비를 하였다.

1963년 10월에는 대통령 선거, 11월에는 국회 의원 선거가 있었다. 군복을 벗은 박정희가 대통령 후보로 출마하였고, 많은 군인들이 군복을 벗고 국회 의원 후보로 나섰다. 공화당이 오랜 준비를 거쳐 선거를 맞은 것과 달리, 2년 가까이 주요 지도자의 정치 활동을 금지당해 온 다른 정당들은 선거 운동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선거는 공화당의 승리로 끝났고, 박정희는 1963년 12월 17일,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제3공화국이 출범한 것이다.

제5대 대통령 선거 결과

제5대 대통령 선거 결과 박정희와 대결한 이는 제2공화국 대통령이었던 윤보선이었다.
옛 한국 민주당 출신인 윤보선은 박정희의 좌파 경력을 집중적으로 공격하였으나, 약 15만 표 차이로 패했다.
윤보선은 독립 협회 활동과 친일 행적으로 유명한 윤치호의 조카이며, 아산의 지주 집안에서 태어났다.
영국 유학생 출신으로 정부 수립 후 초대 서울 시장과 상공 장관을 지냈다. 1963, 1967년 두 차례에 걸쳐 대통령에 출마하였으나 모두 패했다.



5·16 군사 정변과 박정희

5·16 군사 정변과 박정희 이들은 4·19 혁명 1주년을 맞아 학생 시위가 대대적으로 일어나면 그 혼란을 수습한다며 쿠데타를 할 작정이었다.
4·19 혁명 1주기가 학생, 시민의 절제 속에 치러지자, 이번에는 학생들의 남북 회담 추진을 구실로 쿠데타를 일으켰다.
사진의 한가운데가 박정희(1917~1979)다. 그는 가난한 소작농 집안에서 태어나, 일제 강점기에 초등 학교 교사와 일본군 장교를 지냈다.
해방 후 국군 대위로 군 생활을 시작하였는데, 군부 내 남로당 인사로 활동하다가 1949년 무기징역형을 받기도 하였다.
이후 복직하여 5·16 쿠데타 당시 소장으로 2군 부사령관이었다.



한·일 협정과 굴욕 외교 반대 투쟁

쿠데타의 주역들은 미국의 지지를 얻기 위해 공을 들였다. 1961년 11월에 박정희는 좌파 경력 때문에 자신을 의심하였던 미국을 방문하여, 강력한 반공 정책을 약속하고 신임을 얻었다. 미국은 한국의 군사 정부를 지지하며, 한국에 경제 원조와 군사 지원을 계속하겠다고 약속하였다.

한편으로는 한국에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강력히 요구하였다. 기존의 미·일, 한·미 동맹을 미국 중심의 한·미·일 삼각 동맹 체제로 발전시키길 원했기 때문이다. 한·일 관계 개선에는 군사 정부도 적극적이었다. 일본 정부에 식민 통치에 대한 배상을 요구하여 경제 개발을 추진하는 데 필요한 자금을 끌어들이기 위해서였다.

1951년 이후 시작과 중단을 거듭했던 한·일 회담은 쿠데타의 주역들에 의해 급속히 마무리되었다. 그러나 회담의 결과는 국민을 크게 실망시켰다. 일본은 식민 지배에 대해 어떠한 사과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청구권이란 이름의 경제 협력 자금(무상 3억 달러, 차관 2억 달러)을 지원받는 대가로 이를 묵인하였다. 또, 일본이 독도를 한국 영토로 인정하지 않는데도 이를 받아들이는 등 굴욕적인 외교가 계속되었다.

반성하지 않는 일본과 그런 일본에 끌려가는 듯한 한국 정부의 태도에 국민들은 분노하였다. 1964년 3월부터 "한·일 회담 즉시 중지"를 내건 학생과 시민의 시위와 집회가 잇달았고, 6월에 절정을 이루었다. 그러자 정부는 군대를 동원하여 시위를 진압하였다.(6·3 항쟁) 이듬해 6월 양국 정부는 한·일 협정을 조인하였다. 야당은 '굴욕 외교 반대'를 내세우며 강력히 반대하였으나, 두 달 뒤 야당이 불참한 가운데 공화당만으로 구성된 국회가 이를 비준하였다.



한·일 협정 반대 시위(1964)

한·일 협정 반대 시위(1964) 사과와 배상을 받지 못한 채 경제 협력 기금을 받고 서둘러 조약을 체결하려는 박정희 정권에 대한 국민의 저항은 거세었다. 사진은 '한·일 흥정 반대, 미국은 흥정을 강요하지 말 것' 등을 내건 학생 시위대 모습이다.


한·일 협정 조인식

한·일 협정 조인식 1965년 6월, 일본에서 한·일 협정이 조인되었다. 사진은 일본 수상 관저에서 열린 한·일 협정 비준식 장면이다. 박정희는 쿠데타를 일으킨 1961년에 일본을 찾아가 수상과 회담을 하였으며, 이후 중앙 정보부장 김종필과 일본 외상 간의 협상으로 한·일 협정과 관련된 쟁점이 거의 해소되었다.


고엽제 피해자

고엽제 피해자 고엽제는 풀과 나무를 말라 죽게 하는 약품이다. 미국은 베트남 전쟁 때 밀림에서 활동하는 공산 게릴라들을 공격하기 위해 고엽제를 대량으로 뿌렸다. 이 고엽제에는 디옥신이라는 물질이 들어 있어 각종 질병을 일으킬 수 있다. 베트남 국민의 상당수와 한국의 베트남 참전 군인들 일부가 고엽제 후유증을 앓고 있다.


베트남 전쟁에 군대를 보내다

한·일 협정이 비준된 1965년 8월, 국회는 베트남에 전투병을 파견하자는 정부의 제안에 동의하였다.

베트남 파병은 5·16 군사 정변 직후 미국을 방문한 박정희가 먼저 제안하였다. 그러나 베트남의 반대와 미국의 소극적인 입장이 맞물려 당시에는 파병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한국군 전투병 파병은 미국이 북베트남과 전면전을 시작한 1965년부터 이루어졌다. 미국이 공식적으로 파병을 요구하자, 한국 정부가 원조 제공과 경제 협력을 요구하며 이에 동의하였다.

한국이 "반공, 자유 우방 지원"을 내걸고 참전한 10여 년 동안 최대 5만 명의 국군이 베트남 땅을 밟았다. 이 기간에 한국은 10억 달러에 이르는 외화를 벌어들였으며, 기업의 해외 진출과 수출 증대에 도움을 받았다.

그러나 5,000여 명의 젊은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부상자 1만여 명과 고엽제 피해자 2만여 명은 여전히 고통받고 있다.

베트남 파병

베트남 파병 1964년 비전투 요원으로 시작해 이듬해부터는 본격적인 전투병 파병이 이루어졌다. 1973년까지 모든 한국군이 철수하였다.
이 기간에 반공 정책은 더욱 강화되었고, 군사 문화가 사회 전체로 확산되었다. 사진은 많은 사람이 베트남으로 떠나는 군인들을 환송하는 모습이다.



한반도, 전쟁 위기에 휩싸이다

1968년과 1969년에 한반도는 다시 전쟁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위기에 휩싸였다. 1968년 1월 21일, 북한 특수 부대가 청와대를 공격하려 하였다. 이틀 뒤에는 미국 군함 푸에블로 호가 북한 해군에 납치되었다. 한국 정부는 보복 공격을 검토하였고, 미국은 항공모함을 이동하여 북한을 공격하겠다고 나섰다. 10월에는 북한 특수 부대가 산악 지대인 울진과 삼척 지역에 침투하였다. 1969년 4월에는 북한이 미군의 정찰기를 격추하는 사건도 일어났다.



1·21 사태(1968. 1. 21)

1·21 사태(1968. 1. 21) 북한의 특수 부대 소속 무장 게릴라 31명이 청와대를 기습하기 위해 서울에 침투한 사건으로, 군인과 경찰이 이들과의 치열한 전투 끝에 1명을 생포하고 28명을 사살하였다(2명은 도주). 이 사건 이후 남한에는 보복 공격을 위한 특수 부대가 조직되기도 하였다.


푸에블로 호 피랍 사건(1968. 1. 23.)

푸에블로 호 피랍 사건(1968. 1. 23.) 북한은 미 해군 소속의 정보 수집 함대 푸에블로 호가 영해를 침범하였다며 원산 앞바다에서 납치하였다. 미국은 처음에 침범 사실을 부정하였으나, 결국 북한의 요구대로 함장이 영해 침범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문에 서명한 뒤 풀려났다. 석방 후 함장은 발언을 취소하였다.


북한이 한국과 미국을 대상으로 군사 도발을 감행한 것은 1967년부터였다. 북한이 소련과 중국에 의지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사회주의 건설을 완수하겠다는 '자주 노선'을 내세운 이후였다. 북한은 한·일 국교 정상화, 베트남 파병으로 이어지는 남한의 상황을 자국의 안보에 심각한 위기가 조성된 것으로 인식하였다. 북한은 중국이나 소련과 협력하여 위기에 대처하려 하였으나, 중국과 소련이 대립을 그치지 않는 데다가 소련은 오히려 미국을 대상으로 평화 공존 정책을 펼치기까지 하여 위기감이 더욱 높아지기만 하였다.


북한 정부 지출에서 군사비가 차지하는 비중

북한 정부 지출에서 군사비가 차지하는 비중 1962년 조선 노동당은 "경제와 국방의 병진 건설"을 내걸고 본격적인 군사력 증강에 나섰다. 1960년대 이후 한국은 미국의 협력을 바탕으로 경제 성장에 주력하였으나, 북한은 소련이나 중국의 지원을 거의 받지 못한 상황에서 자주 국방 자립 경제를 추진하였다. (출처 : 국토 통일원, 《북한 경제 통계집》)


이에 북한은 군사력을 키우는 한편, 제3세계 국가들과의 협력 방안을 모색하였다. 베트남 전쟁과 한국의 베트남 파병을 비판하고, 북베트남을 돕기도 하였다.

북한이 침투시킨 특수 부대는 한국 국군에 의해 대부분 사살되었다. 그리고 한국과 미국이 전쟁을 부를지도 모를 즉각적인 대북 군사 공격을 자제하여, 남북 대립이 전쟁으로 치닫는 사태는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전쟁 위기가 지속되는 동안 남한에서는 향토 예비군이 창설되고 학교에서 군사 교육이 제도화되었다. 남북 교류를 추진하자는 주장도 꼬리를 감추었다. 반공을 내세워 국민의 생각을 가두고 독재를 강화하기에는 더욱 유리해졌다. 안보 위기를 이용해 권력을 강화하기는 북한도 마찬가지였다.

북한은 강경한 반미 정책으로 국민을 결속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한·미·일과 화해할 수 없는 대립을 만들어 냄으로써, 군사비 부담이 가중되어 지속적인 경제 발전에 적지 않은 어려움이 더해졌다.



향토 예비군 창설(1968. 4. 1.)

향토 예비군 창설(1968. 4. 1.) 1·21 사태 직후, 군 복무를 마친 청장년을 조직하고 군사 훈련을 제도화하였다. 5월 29일 '향토 예비군 설치법'(법률 2017호)을 공포·시행함으로써 그 체계가 완성되었는데, 창설 당시 예비군 수는 약 250만 명이었다.


울진·삼척 지구 북한 특수 부대 침투 사건(1968. 10. 30.~12. 26.)

울진·삼척 지구 북한 특수 부대 침투 사건(1968. 10. 30.~12. 26.) 1968년 10월 30일부터 11월 1일까지 사흘에 걸쳐 강원도 울진·삼척 지구에 북한의 특수 부대원 120명이 침투하였다. 군인과 경찰이 113명을 사살하고 7명을 생포하면서 마무리 지었다. 이를 계기로 북한에 대한 경계심이 크게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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