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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자녀
작성일 2007/10/25 (목) 07:43
추천: 0  조회: 2590  
베트남참전 참전 군인들의 이야기길"(김양희기자의 베트남 일기)
‘베트남전 참전 군인들 모두의 이야기이길’
<김양희 기자의 베트남 일기 1>
2007년 09월 05일 (수) 18:37:10 김양희 객원기자 yang275@hotmail.com

본사 김양희 기자가 지난 달 25일부터 29일까지 4박5일에 걸쳐 베트남에 다녀왔다. 베트남은 우리 민족과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에 놓인 적이 있었다. 미국이 6.25 한국전쟁에 참전했듯이, 베트남은 미국과 민족해방전쟁을 치렀다. 또한 박정희 정권의 결정으로 한국의 젊은이들이 베트남전에 참전해 이국땅에서 수많은 피를 흘렸다. 이 베트남 일기는 한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당시 군대를 가고, 또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군인들 모두의 이야기이다. / 편집자 주


2007. 8. 25

‘아는 거라곤 베트남전, 베트남처녀, 쌀국수, 호치민’

   
  ▲ 베트남의 꽃파는 처녀들. [사진-통일뉴스 김양희 객원기자]  
 
인천공항에는 벌써 고모가 도착해 있었다. 며칠 되지도 않는 일정이지만 해외여행 때마다 음식 때문에 고생을 한 고모는 이민이라도 가는 것처럼 큰 가방에 라면이며 고추장을 가득 싸왔다 한다. 짐을 부치고 발권 수속을 마쳤다. 아빠, 엄마, 여동생, 남동생 내외 나 그리고 고모 이렇게 우리가족 8명은 드디어 베트남으로 향한다.

나는 사실 베트남에 대해 손톱만큼의 관심도 없었고 또 그만큼 무지했다. 베트남 하면 떠오르는 것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미국을 이긴 베트남전, 최근 사회 문제를 많이 야기시키며 한국으로 시집오는 베트남처녀, 쌀국수, 호치민 정도가 다였다.

주변에서 나보다 나이가 많으신 분들은 “월남에서 돌아온 새까만 김상사” 그런 노래를 불렀고 아이들이 모여 “콩은 콩인데 못 먹는 콩은? 썩은콩, 베트콩” 하면서 놀았다고도 하는데 나는 태어나기를 베트남전이 끝난 후에 태어난지라 베트남전쟁에 대한 추억도 하나 없다.

그저 어린 시절 아빠의 앨범에서 아빠가 야자나무가 가득한 이국적인 배경에 어마어마하게 큰 구렁이와 도마뱀을 목에 감고 찍은 사진, 베트남에 위문공연을 온 연예인들과 함께 찍은 사진, 더운 날씨에 웃통을 벗고 찍은 사진 등을 여러 장 봤고 현충일이 되면 아빠를 따라 국립묘지를 찾았을 뿐이다.

이후 베트남전에 대해 한홍구 교수가 쓴 ‘대한민국사’에서 5.16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가 미국에 인정을 받기 위해 먼저 미국에 파병을 제안했고 그나마도 대체 어느 나라 대통령인지 ‘미국이 어려운 틈을 타 우리가 타산적으로 나간다면 너무 야박하다’며 참전군인들의 핏값까지 덤핑처리를 했다는 것을 읽었다.

또 한겨레신문사에서 진행한 노근리 양민학살 사건 등 미군들이 우리의 순진무구한 민간인들을 살해한 것처럼 베트남에서 우리의 군인들이 저지른 사건들도 정부 차원에서 먼저 사죄하고 배상을 해야 한다는 캠페인에 공감을 한 정도이다.

이런 내가 베트남에 갈 생각이 있을 턱이 없다. 나뿐 아니라 우리 식구들 중 누구도 여름휴가를 베트남에서 보내야겠다는 생각을 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어렵사리 모두가 휴가를 맞춰가며 베트남을 가게된 것은 순전히 아빠 때문이었다.

‘아빠는 백마부대로 베트남전에 파병’

   
  ▲아빠의 훈장, 참전기장, 종군 기장 [사진-통일뉴스 김양희 객원기자]  
 
아빠는 1970년 4월3일부터 1973년 3월22일까지 군대에 가셨고 이 사이 1971년 4월1일부터 1973년 2월28일까지 백마부대 29연대 수색중대 군인으로 베트남전에 파병되었다.

인터넷에서 백마부대와 관련한 자료를 찾아보니 천하무적 ‘백마부대’는 밀림의 왕자 ‘맹호부대’, 귀신 잡는 해병 ‘청룡부대’ 등 전투부대와 십자성부대, 비둘기부대, 백구부대, 은마부대 등의 수송 및 지원부대와 함께 베트남의 나트랑 지역에 주둔하면서 치열한 전투를 치렀다.

이곳에서 백마부대는 파월기간 중 478회 대부대 전투와 21만 1천 236회의 소부대 전투를 치르는 등 총 21만 1천 714회의 전투를 치렀고 전투 중에도 대민농사, 노력봉사, 의료봉사, 도로건설 및 주택건설, 급수시설 등 많은 대민사업을 지원했다.

1967년 1월29일 혼바산에서 벌인 백마 1호 작전을 비롯하여 1967년 3월8일 맹호부대와 합동으로 월남의 동맥인 1번 도로 개통의 오작교 작전과 1967년 7월9일 투이호아에서 실시한 홍길동 작전을 비롯하여 박쥐작전, 도깨비작전 등 전사(戰史)에 길이 빛낼 많은 전과(戰果)를 올려 천하무적 백마부대의 전설을 남겼다 한다.

집안 빚을 갚기 위해 자원을 해 베트남에 간 아빠는 1년만 근무를 하면 되는 것인데 3개월간 월남어교육대에서 교육을 받고 베트남어 통역병이 되었다. 아빠의 역할은 마을 주민들을 통해 각종 정보를 수집하는 역할인데 “3개월 배웠는데 뭘 알겠냐?”는 아빠의 말씀대로 베트남어를 잘하지는 못했지만 그나마도 없는 통역병인지라 1년이 넘어서도 계속 부대에 잡혀 있었고 그렇게 하루 이틀 지나다가 전쟁 막바지에 철수할 때야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런 아빠의 월급은 한달에 53달러 내외. 아빤 통역병이면서 부대의 경리계를 맡아 우리 군인들의 월급이 얼마인지 기억하고 계셨다.

아빠는 기본급이 있고 일당이 1달러가 조금 넘어 30일이 있는 달과 31일이 있는 달의 월급이 조금 차이가 나지만 사병들은 53~54달러, 장교들은 140여 달러, 중위 이상은 150여 달러였다 한다.

한홍구 교수의 ‘대한민국사’

한홍구 교수는 ‘대한민국사’에서 한국군 사단장인 소장이 미국으로부터 받은 월 급여가 354달러였던 반면 필리핀군과 타이군의 소대장인 소위는 각각 매월 442달러, 389달러를 받았고 일반 사병들은 남베트남군의 월 급여에도 미치지 못하는 형편없는 대우를 받았다고 전한다.

당시 우리 군인들 사이에는 ‘우리나라가 UN 가입이 되지 않아 UN의 전투 수당을 타지 못하고 해외근무 수당만 타 월급이 적은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단다.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의 대규모로 해외 파병을 한 베트남전에 1965년부터 1972년까지 총 31만 2853명의 우리 군이 파병되었고 희생자수는 사상자는 5000여명, 부상자는 1만여 명, 고엽제 피해자는 2만여 명에 이른다. 이들이 목숨을 걸고 그곳에서 번 돈은 대부분 하루 채 2달러가 되지 않는다.

집에는 먼지 가득한 아빠의 베트남 참전기장과 종군기장이 있었고 난 이번 여행을 가게 되면서야 이런 아빠의 이야기를 알게 됐다.

전쟁 중 아빠는 부대에서 타지에서의 외로움을 달래주던 같은 동향의 절친한 친구를 잃었다. 고모는 아빠가 당시 “부모를 잃은 것만큼 슬프다”고 했다 전한다.

얼굴은 모르지만 이름으로 만난 이춘신 하사(병장에 사망을 했다가 죽어서 일 계급 특진 하게 된 것이라 한다), 그 아저씨 덕분에 난 어린 시절 해마다 현충일이 되면 쉬는 날이니 다른 아이들처럼 산으로 들로 유원지로 놀러 가고 싶었지만 아빠와 함께 국립묘지에 가곤 했다. 그저 아빠의 동기였던 그 아저씨의 비석을 한번 찾고 주변을 둘러보는 게 다인 뻔하고 지루한 일정에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고 중학생이 된 이후에는 가지를 않았다.

나와는 달리 아빠는 60세가 다되었지만 올해도 국립묘지를 찾았고 그때 함께했던 전우들을 만나 술을 한잔 걸치고 오셨다.

20대의 꿈 많던 시기 치열한 전장에서 함께한 이들이기에 애틋함이 큰 것인지 그들은 함께 모여 베트남을 가기로 했고 두 차례나 당시의 그곳을 찾았다. 그러나 아빤 한 번은 직장에서 휴가를 내지 못해서, 또 한 번은 미국에 있는 사촌오빠의 결혼식에 참석하느라 가시질 못하고 그저 백마부대를 표시하던 기둥 등이 남아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랬기 때문에 아빤 더욱 자식들을 모두 데리고 아빠가 젊은 한 시절을 바친 그곳을 보여주고 싶어 하셨다. 함께 가는 고모는 덤덤한 우리와 달리 감개가 무량하다 했다.

‘아빠만이 아닌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군인들 모두의 이야기이길’

   
  ▲ 하롱베이 지역 거리 풍경. 한 아낙네가 농라이(베트남 전통모자)를 쓰고 자전거를 타고 있다.[사진-통일뉴스 김양희 객원기자]  
 
아빠와 8살 차이가 나는 고모는 어렸지만 아빠의 당시 모습을 꽤 많이 기억을 하고 있었다. 그 시절 너무 흔한 일이라 뉴스 꺼리도 되지 않지만 당시 후방배치를 받았던 아빠는 돈을 쓴 다른 어떤 이 때문에 최전방으로 부대가 바뀌었다 한다.

면회를 가려해도 차에서 내려서 10리 이상을 걸어 들어가고 또 군인인 아빠도 10리 넘게 걸어 나와야 하는 그런 곳이었다.

아빠가 최전방으로 자대 배치를 받던 날, 할머니께선 무주구천동에서부터 항아리 가득 삼계탕을 끓여 용산역에서 아빠가 지나가길 기다렸다.

할머니 외에도 그땐 군대를 가면 죽는 사람도 많고 힘들고 배고프게 고생을 하는 곳이라 엄마들이 모두 용산역에서 먹을 것을 싸들고 기다렸다 한다.

어느 곳에서든 아들을 한눈에 알아보는 게 어머니라 하던가, 할머닌 그 많은 군인들 중 ‘용사의 집’으로 향하는 아들을 발견하고 바로 항아리에 고이 담은 삼계탕을 먹으라 했고 아빤 행진 중 도저히 먹을 수 없다며 뿌리쳤다. 용산역부터 ‘용사의 집’까지 그 짧은 거리를 겨우 함께하고 아빤 건물 2층에서 각 잡고 앉은 채로 흘끔흘끔 할머니를 쳐다보고 할머닌 끝내 아들에게 고기 한 점 제대로 못 먹인 것을 안타까워하다 돌아오셔야 했다한다.

인삼행상을 하신 할머니는 서산에서 인삼을 떼다가 삼천포로 가서 팔곤 하셨는데 차비를 아끼기 위해 걸어서 그 먼 곳을 오가셨다. 겨울이면 할머니는 고무신을 두 켤레씩 신고 다녔다. 아들이 돈을 보내도 그 피 같은 돈으로 남들 흔히 신는 털신 한 켤레 사는 것이 아까워 그 춥고 험한 길을 고무신으로 다니고 신발이 떨어지는 것이 아까워 헌 신발을 새 신발 위에 덧씌워 신고 다니셨다.

할머니는 또 아빠가 전쟁터로 떠난 뒤 아무리 뜨거운 날이라도 절대 그늘에서 쉬질 않으셨다한다. 내 자식은 더 뜨거운 곳에서 지금 죽을지 살지도 모르는데 어찌 나만 시원한 그늘에서 쉴 수 있겠냐는 것이다.

그런 할머니는 인삼행상을 계속 하면서도 아빠가 돌아오는 날까지 매일을 깨끗이 씻고 빌고 또 비셨다. 겨울에도 어린 고모에게 초롱을 들려 개울가로 나가 얼음을 깨 몸을 씻고 아들의 무사귀환을 빌어 칠흑 같은 어둠이 무서웠던 고모도 어서 오빠가 오길 바라곤 했다고 한다.
그렇게 정성을 들인 할머니 덕분에 아빤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고 이제 결혼을 하고 장성을 한 아들, 딸, 사위, 며느리를 앞세워 베트남을 찾는다고 하니 고모는 가슴이 벅찰 지경이라 했다.

이런 안타까운 모습은 분명 우리 아빠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당시 군대를 가고, 또 베트남전에 참전을 했던 우리의 젊디젊은 군인들 모두의 이야기일 것이다. <계속>
우리와 닮은 역사 가진 베트남
<김양희 기자의 베트남 일기2>
2007년 09월 08일 (토) 13:46:53 김양희 객원기자 yang275@hotmail.com
 

본사 김양희 기자가 지난 달 25일부터 29일까지 4박5일에 걸쳐 베트남에 다녀왔다. 베트남은 우리 민족과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에 놓인 적이 있었다. 미국이 6.25 한국전쟁에 참전했듯이, 베트남은 미국과 민족해방전쟁을 치렀다. 또한 박정희 정권의 결정으로 한국의 젊은이들이 베트남전에 참전해 이국땅에서 수많은 피를 흘렸다. 이 베트남 일기는 한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당시 군대를 가고, 또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군인들 모두의 이야기이다. / 편집자 주


비행기에서 내려 하노이 노이바이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를 반긴 것은 제복을 입은 베트남 군인이다. 전시(戰時) 민항기 동원 등을 위해 민용항공총국을 사실상 군이 관할, 평양 순안공항에서 근무하는 직원 대부분이 군인이었던 것처럼 이곳도 입출국 수속 담당 직원, 짐 부치는 직원 할 것 없이 많은 수의 군인이 근무를 하고 있다.

그러나 군인의 목에 금목걸이가 걸려있고 껌을 짝짝 씹어대는 모습에서 평양의 군인들과 한참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밖에 나오자 눅눅한 뜨거움이 온몸을 휘감는다. 베트남은 우리나라보다 2시간 늦어 현지시간은 10시 30분. 밤인데도 불구하고 차가 주차되어 있는 곳까지 잠깐을 걸어가는데도 숨이 찰 정도다.

   
  ▲ 하노이 호텔 내의 매점 냉장고 안, 꼭 우리나라 작은 가게의 냉장고처럼 우리에게 익숙한 한국 음료수가 가득차 있다.[사진-통일뉴스 김양희 객원기자]  
 
하노이는 춘하추동이 비교적 뚜렷한데 평균기온이 겨울에는 10~16℃, 여름에는 37~38℃까지 치솟는다. 이러다보니 우리가 보기엔 당연히 냉장고 안에서 팔아야할 생고기를 시장 좌판에 펴놓고 팔기도 하는데 강한 자외선에 박테리아가 사멸, 오히려 상하지 않고 좋다할 정도다.

현재 이곳은 한여름이 지나 많이 시원해져 낮 최고 기온이 35℃정도까지 오른다고 한다.
이 정도의 기온만 해도 더운데 베트남은 습도가 80% 정도까지 올라 체감 기온은 2℃이상 높게 느껴진다. 특히 전쟁이 있었던 남부 베트남의 경우 평소에도 40℃이상 온도가 올라갔다하니 가뜩이나 덥고 습한 가운데서 전쟁으로 인한 극도의 공포 등은 우리 군인들을 얼마나 예민하게 이성을 마비시켰을 지 상상조차 되질 않는다.

우리 일행을 책임질 가이드는 베트남인 가이드, 한국인 가이드, 베트남인 운전사, 베트남인 운전차장 등 4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베트남은 자국민 보호정책으로 인해 일본, 싱가폴을 제외하고는 다른 나라 국민이 가이드를 하면 안 되고 현지가이드를 채용해야 한다고 한다. 버스 차장이 있는 것이 특이한데 이는 청년층이 많은 베트남에서는 취직이 어려워 노동력이 싼 만큼 별 것 아닌 잡스러운 일에도 사람을 고용하기 때문이라고.

숙소로 이동하기 위해 버스를 타자 가이드는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고 인사를 한다.

이곳은 공산당이 유일정당인 사회주의 국가로 수도인 하노이에는 북한 대사관도 있다 한다. 그러나 베트남은 1986년 도이머이(쇄신) 정책이 추진돼 개혁과 개방을 중심으로 한 시장경제로 이끌고 이념이 중시되던 정치ㆍ외교 노선도 경제 중심인 ‘실리주의’로 바뀌고 있다. 이런 까닭에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은 전혀 사회주의 국가라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고 할 정도다. 나는 이번 여행에서 얼마나 보고 느낄 수 있을까?

우리와 닮은 베트남 역사

   
  ▲ 하노이도 평양과 마찬가지로 곳곳에서 새로 건축을 하는 모습이 보였다. [사진-통일뉴스 김양희 객원기자]  
 
베트남과 우리의 역사는 놀라우리만큼 닮아있다.
중국과 프랑스 등 열강에 의해 식민지 지배를 받고 또 만주사변으로 시작된 일본의 침략으로 실질적인 지배를 받던 베트남은 1945년 일본의 2차 세계대전 패망으로 독립이 되었고 이후 남과 북으로 분할되었다가 미국과 전쟁을 치른다.

베트남은 중국 한나라 등에 의해 식민지 지배를 당하면서(BC 111~AD 938) 중국으로부터 교육제도, 한자 및 서적, 행정제도, 제방축조술, 토지개발법 등을 도입했고 유교, 도교, 불교 등의 종교를 수용했다.

중국의 남하군을 박당강 전투에서 물리치고 독립을 쟁취한 응오왕조를 시작으로 마지막 응우엔 왕조까지 베트남은 전통왕조시대(939~1858)를 거치다가 프랑스령 식민시대(1859~1954)를 맞게 된다.

만주사변을 시작으로 베트남까지 침략한 일본군은 1940년 베트남에 진주했다. 1945년 3월 일본군은 프랑스 식민당국을 추출하고 베트남을 직접 지배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1945년 8월 2차세계대전에서 패망한 일본이 항복을 선언하고 같은해 9월 2일에 호치민은 베트남 민주공화국이 독립했음을 선언한다.

그러나 1945년 9월 연합군이 베트남에 진주했다. 일본군의 무장 해제를 위해 북위 16도선 이북의 베트남 땅에는 20만의 장개석군이, 이남에는 영국군이 각각 진주했으며 1946년 1월에는 영국군은 프랑스 군에게 북위 16도선 이남의 베트남 땅에 대한 전권을 이양했다.

1946년 2월에는 프랑스-중국협정에 의거해 프랑스군은 북위 16도선 이북의 베트남에 대한 관리권을 획득했으나 같은 해 12월, 베트민군이 하노이에서 일제히 봉기해 제 1차 인도차이나 전쟁(대불전쟁)이 발발했다. 1950년 1월에는 중국과 소련이 ‘베트남 민주 공화국’을 승인하고 2월에는 미국과 영국이 베트남국(바오다이 정권)을 승인했다.

1954년 5월에는 디엔비엔푸가 함락, 프랑스에게서 완전 해방되고 1954년 월 북위 17도선을 잠정 군사분계선으로 해 베트남을 남과 북으로 분할하는 제네바협정이 조인되었다.

이후 1955년 남부에는 응오 딘 지엠을 초대대통령으로 한 미국이 지원하는 베트남이 성립되었고 1956년 5월 북베트남은 남베트남에 통일선거 실시를 위해 협의할 것을 제의했으나 남베트남을 이를 거부했다.

1960년 1월 북베트남은 신헌법을 공포하고 12월에는 민족해방전선(NLF, 속칭 베트콩)이 결성되었고 1963년에는 미국의 묵인아래 진행된 쿠데타에 의해 남베트남 응오 딘 지엠 정권이 붕괴했다. 쿠데타로 부패하고 타락한 정권은 붕괴됐으나 이후 남베트남 정권은 쿠데타를 일으킨 장군들이 서로 정권을 잡으려 싸워 새로 제정되는 법안이 며칠 만에 파기되기도 하는 등 혼란에 혼란이 거듭된다.

이런 상황에서 1964년 8월에는 미군기가 북베트남 어뢰정 기지를 공습하는 통킹만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미국은 북베트남에서 도발했다고 발표를 했으나 이는 1990년대 이후 닉슨 대통령이 폭격받았다고 주장한 것이 명분을 만들어 의회의 승인을 받고 여론 형성을 시켜 전쟁을 일으키기 위한 자작극이라고 밝혀지기도 했다.

1965년 2월 미군이 북폭을 개시하면서 전쟁에 개입하여 제 2차 인도차이나 전쟁이 시작됐다. 미국은 최신식 무기로 정면대결을 펼치면 절대 지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단시간에 전쟁을 끝낼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그러나 철저히 베트남 민중들의 도움을 받았던 민족해방전선의 군인들은 지형 등을 이용한 게릴라전으로 최신식무기의 기를 떨어트리고 1968년 1월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이 미국의 허를 찌르며 베트남 최대 명절인 음력설에 일제히 공세를 시작, 승기를 잡는다.

이를 계기로 1968년 5월 미국과 북베트남이 파리에서 평화회담을 시작하고 1969년 1월에는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이 주체가 된 ‘남베트남 임시혁명정부’가 수립되었으며 1973년 1월 미국, 북베트남, 남베트남, 남베트남 임시혁명부가 파리에서 평화협정에 조인했다.

그러나 1975년 4월 30일 북베트남군에 의해 사이공이 함락되면서 마침내 베트남은 통일되었고 1976년 4월 26일 남북통일 총선거를 실시하고 7월 2일 베트남 사회주의공화국이 수립되었다. (참고자료-베트남, 베트남 10000일간의 전쟁, 호치민 평전 등)

‘풍부한 맛, 다람쥐똥커피’

   
  ▲ 전력 사정이 좋지 않은 베트남은 저녁 8시 이후에는 거의 모두 불이 꺼지고 간간히 맥줏집만이 불을 켜고 있을 뿐이다. [사진-통일뉴스 김양희 객원기자]  
 
창밖 야경은 평양과 별반 차이가 없다. 베트남도 북녘과 마찬가지로 전력 사정이 좋지 않다고 한다. 때문에 8시 이후만 되도 대부분 어둡고 주요 건물 등에만 불이 켜져 있었다. 간간히 맥줏집에 몇 사람이 모여 있는 모습이 보이고 10시 이후에는 아예 한밤중이다.

가이드는 우선 우리의 여권부터 걷었다. 해외여행을 가서 남에게 여권을 맡기는 일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주거 이전의 자유가 없고 친척 집에 이동을 할 때에도 관할서에 신고를 해야 하는 이곳은 숙박업소도 숙박증을 맡겨야만 숙박이 가능하기 때문에 외국인들도 호텔에서 여권을 제시해야 묵을 수 있다고 한다.

이어 가이드는 “베트남에서는 물, 오토바이, 건강 이 세 가지를 조심해야합니다”라고 강조한다.

베트남은 물이 많은 나라이지만 석회성분이 많아 정작 마실 물은 부족해 우리 같은 여행자들은 생수를 사 마셔야하는데 한번 쓴 병에 다시 물을 담아 팔기도 해 뚜껑에 비닐 캡이 잘 씌어져 있는 것을 골라 사야한단다.

베트남 사람들은 주로 커피나 차를 많이 끓여 마셔 차가 발달했다.
이는 역시 황하 등 깨끗하지 못한 강 때문에 식수가 부족한 중국이 꼭 차를 끓여 마셔야 해 차가 발달한 것과 같다. 중국의 영향도 꽤 컸을 것이라 생각된다.

   
  ▲ 베트남이 자랑하는 다람쥐똥커피. [사진-통일뉴스 김양희 객원기자]  
 
이곳에 오기 전 베트남에는 특히 다람쥐똥 커피가 유명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베트남은 세계 2위의 커피 수출국으로 세계 최고의 품질을 자랑한다. 베트남의 커피 역사는 프랑스 식민시절 프랑스가 수탈을 위해 베트남에 대거 커피농장을 세우고 농민들을 노예처럼 부린데서 시작된다. 베트남 전쟁 후에는 정부의 강제 이주 정책으로 인해 소수민족들에 의해 정책적으로 재배되기도 했다.

특히 베트남 커피 중에서도 최상품으로 치는 다람쥐똥커피는 베트남 고산지대의 특별 커피 작목반에서 커피 수확기에 열대 다람쥐들을 방목 시키며 생산한다. 다람쥐들은 질 좋은 커피의 과육을 골라 먹고 커피 열매를 똥으로 배출하는데 이를 여러 번 물로 씻어 내면 더할 나위 없이 맛있는 커피가 된다는 것.

이 커피는 풍부한 향기와 함께 고소한 맛과 연한 신맛 부드러운 쓴맛까지 고루 지니고 있다.

   
  ▲ 베트남인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엽서. 베트남에는 오토바이가 주요교통수단으로 엄청나게 많은데 돼지나 황소를 실을 수도 있는 등 미니트럭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사진-통일뉴스 김양희 객원기자]  
 
   
  ▲ 베트남에는 정말 오토바이가 엄청나게 많다. [사진-통일뉴스 김양희 객원기자]  
 
베트남에서 두 번째로 조심해야 할 것은 오토바이.
베트남 여행객의 대부분은 “태어나서 이렇게 많은 오토바이는 처음 봤다”고 할 정도로 하노이 시내는 오토바이로 가득 차 있다. 산유국인 베트남은 기술력 부족으로 개발을 다른 나라에 맡겨 기름 값이 산유국치고는 비싸지만 지하철이 없고 버스 노선도 많지 않아 대부분 오토바이 택시를 타고 다닌다. 거리 한쪽에 서 있는 오토바이들은 대부분 오토바이 택시라고. 베트남에서 오토바이는 승용차를 넘어 우리의 소형 트럭 개념으로 일가족 4명이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 것은 물론 황소를 묶어 실고 다닌다고 한다.

베트남에서는 백색피부를 최고의 미인으로 치기 때문에 더운 날씨에도 모자와 마스크 어깨까지 오는 긴 장갑 등을 착용한 여인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거리를 달리는 모습 또한 장관이라고 한다.

특히 출퇴근 시간 즈음에는 거리가 오토바이로 꽉 찬다고. 때문에 거리를 거닐 때 운전자가 예측 가능하도록 갑자기 뛰거나 하지 말아야 하고 또 여행객을 노리는 날치기가 많으니 가방을 가로질러 단단히 매란다.

늘 어디서나 마찬가지이지만 베트남에서는 건강에 이상이 없도록 조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한다. 병원이 많지 않고 시설도 미비한 베트남에서 병원 시설을 이용하는 것은 그리 좋은 경험이 아니라고.

가이드는 “한 번은 여행을 온 할아버지가 호텔에서 비누를 밟고 미끄러지셔서 머리를 꿰매기 위해 병원을 갔는데 쇠도시락통 같은 데에서 주사기 바늘을 꺼내더니 마취도 안한 채로 한손에는 담배를 물고 한손에는 바늘을 들고 꿰맸다”며 “아프지 말도록 조심하라”고 슬쩍 겁을 주기도 했다.

'한국 드라마 넘쳐나는 베트남 호텔 TV'

도시에서 버스는 시속 50km 이내로 달려야 한다는 규정에 한국인 관광객들을 위해 빨리 달린다고는 하지만 어둠 속을 뚫고 느릿느릿 한참을 달린 끝에 우린 호텔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불까지 널어놓은 우리나라 80년대의 모습을 한 아파트 맞은편에 위치한 호텔에는 한국인 여행자가 얼마나 많을지 예상이 될 정도로 로비에 있는 마트에는 사발면, 과자, 음료 등 어느 것 하나 한국제품이 아닌 게 없다.

호텔직원들도 간단한 한국어 한마디 못하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호텔 방에는 30여개의 채널이 각국의 방송을 내보내고 있다. KBS 월드 채널에서 우리나라의 뉴스는 물론 드라마, 연예 오락 프로그램까지 모두 볼 수 있다. 이미 풀하우스, 가을동화, 대장금 등이 방영됐고 현재 주몽, 루루공주 등이 방영되는 등 베트남에서 한국 드라마는 한류열풍을 이끌고 있다.

특히 대장금은 3번 이상 방영될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는데 당시 ‘거리에 오토바이가 다니지 않을 정도’라고 한다. 때문에 장동건, 이영애 등 국내 스타들이 현지 광고에 출연하면서 현지에서 국내 스타가 출연하는 방송을 보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나는 이곳이 사회주의 국가인 만큼 혹시나 북녘의 조선중앙방송 채널이 있는지 뒤져봤지만 나의 호기심에 대한 해답은 ‘없다’이다. 다만 한글로 적혀 있는 ‘1층의 마트에서 한국담배 15달러, 한국에서 사는 것보다 1만원 쌉니다. 바로 살 수 있습니다’는 메모가 눈길을 끈다.

수출하는 담배 값은 면세가 돼 싸기 때문에 오히려 현지에서 국산 담배를 사가지고 들어오는 역수입담배가 문제시된다더니 여행지에서 손쉽게 살 수 있는 구조였다. 우리 식구 중에는 담배피우는 사람이 하나 없었지만 담배를 많이 피우는 사람은 담배만 사가도 여행비용의 일부를 건질 수 있겠구나하는 생각도 들었다.

끈적끈적 덥지만 우리와 비슷한 역사를 가지고 있고 또 야경마저 평양과 비슷한 하노이에서 첫 밤을 맞고 있다.

     
이름아이콘 최해영
2007-10-25 09:03
베트남 여행을 위와같은 이유로 많이들하지만 저는 가고 싶지가 않더이다.
젊음의 한때  그렇게도 지긋지긋한곳을 ,,, 그리고 지금의 이 아픔을 제공했던 곳이기에....
   
이름아이콘 car
2008-03-23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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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아이콘 car
2008-03-28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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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아이콘 차사랑
2008-05-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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