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전쟁 참전용사 (좌측부터)장경락, 조현길, 이종윤, 전재섭, 혼순백 씨가 8일 대통령명의 국가유공자 증서를 수여받은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지난 8일 오전 경북 안동의 육군 제3260부대 퇴계관. 베트남전쟁 참전유공자들과 안동시장 등 관계 인사들이 강당 안으로 들어서자 군악대의 웅장한 관악연주가 이들을 반갑게 맞았다. 1960~70년대 이역만리 베트남으로 파병돼 세계평화를 수호하고 조국의 위상을 드높인 월남전 국군 참전용사들에게 대통령명의의 국가유공자증서를 수여하는 전수식이 이날 열렸다.

증서를 받은 참전용사는 고엽제단체 장경락·전재섭·홍순백·조현길·이종윤, 베트남참전단체 김현영·진주태·권구수·김윤기 이상 9명. '우리 대한민국의 오늘은 국가유공자의 공헌과 희생위에 이룩된 것이므로 이는 애국정신의 귀감으로서 항구적으로 기리기 위하여 이 증서를 드립니다. 대통령 이명박'이라고 쓰여진 노란색 국가유공자증서에는 대통령과 국가보훈처장의 붉은 인장과 함께 참전자 개인의 이름 석 자가 쓸쓸하게 새겨져 있었다.

올해 3월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개정됨에 따라 '고엽제법'과 '참전법'이 적용하는 국가 등록 참전용사들이 지난 6월 30일부터 '국가유공자'로 격상되면서 각 지자체마다 이러한 행사를 갖고 있다. 인근 도시의 경우 따로 전수식 없이 증서가 우편으로 배달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미 국가유공자로 지정된 참전용사들에게 이날의 전수식은 단순 이벤트일 뿐. 자리에 참석한 한 참전용사는 "의미 없는 증서는 깊이 파인 전쟁의 상흔을 달래기에 턱없이 부족한 위안"이라 표현했다. 전수식이 끝나자 참석자들은 강당 앞마당에 준비된 물감총으로 풍선을 맞혀 터트리는 아이러니한 퍼포먼스를 펼치기도 했다. 행사의 재미를 주기 위해 주최 측이 마련한 이벤트였겠지만 전쟁의 기억을 지우고 싶은 참전용사들에겐 쓸데없는 친절이었다.

베트남전쟁(1960∼1975)이 역사 속의 과거가 된 지 40여년이 지났지만 참전용사들에게 이 전쟁은 현재진행형이다. 파병 당시 '영웅'으로 칭송받던 그들은 지금 386세대들로부터 '용병'이라 매도를 당하고 있다. 귓전에는 아직도 전우들의 비명소리와 요란한 폭음이 맴돌고 있는데 말이다. 조국의 명령을 받아 사선을 넘나들며 싸웠던 참전용사들에게 이제 남겨진 것은 포탄에 찢겨져 험하게 아문 상처와 고엽제후유증 뿐. 그들은 지금도 명예회복을 위해 총성 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다.

▲미군이 살포한 고엽제로 울창했던 베트남밀림이 초토화됐다.   고엽제살포전(위), 살포후(아래)

미군의 역습작전 '에이전트 오렌지(Agent Orange)'

베트남전쟁 당시 정글지형에 익숙한 베트콩(베트남민족해방전선 군인)들의 기습적으로 치고 빠지는 게릴라전에 혼비백산한 미군은 정글의 모든 식물들의 씨를 말려 죽이는 고엽 작전을 펼쳤다. 이때 사용한 고엽제(defoliant)는 제초제 2, 4, 5-T와 2, 4-D를 혼합한 물질이다. 고엽제는 위험물질이기에 구분이 쉽도록 해당 드럼통을 오렌지색으로 칠했다 해서 '에이전트 오렌지(Agent Orange)'란 이름이 붙었다.

육상부대가 지상살포를 펼치기도 했지만 미군은 훨씬 넓은 지역에 많은 양을 뿌릴 수 있는 공중살포를 선호했다. 지상군이 베트콩 은신지역의 좌표를 알리는 즉시 C-123 수송기가 '에이전트 오렌지'를 가득 싣고 출격해 공중에서 마구 뿌려댔다. 미군은 B-52 폭격기 편대를 동원해 지상으로 폭탄을 쏟아 붓는 '융단폭격'도 실시해 베트남 정글 전역을 초토로 만들었다.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군이 살포한 고엽제로 인해 베트남의 기형아 출생률과 암발생률이 급증했다. 사진은 기형적인 손을 갖고 태어난 여아가 두 손으로 펜을 잡고 힘겹게 글씨를 쓰고 있는 모습.

미군은 1961년 11월부터 10년간 베트남의 산악과 농경지 2만4천㎢에 고엽제를 살포했다. 이는 당시 베트남 내 모든 경작지의 10%, 전 산림의 30%에 달하는 면적이었다. 물량은 다국적 화학회사인 다우 케미컬, 몬산토, 발레로 에너지 사(社) 등에서 제조한 제품을 공수했다.

이렇게 살포된 고엽제는 베트남 국민들에게 전쟁보다 더 큰 재앙을 안겨줬다. 고엽제를 혼합 제조하는 과정에서 독극물질인 다이옥신(Dioxine)이 생성됐기 때문이다.

인간이 만든 물질 중 가장 위험하다고 알려진 다이옥신은 반영구적으로 인체에 축적돼 기형아 출산과 암 발생의 원인이 된다. 미군은 고엽제 살포에 대해 당시 상황에 있어 하나의 전략이었지, 화학무기로 사용한 것은 아니라고 변명했다. 하지만 그 위험천만한 전략은 베트남 국민과 참전 군인들에게 씻을 수 없는 아픔을 남겼다. 당시 베트남 국민 약 400만 명이 고엽제에 노출되면서 기형아 출산이 급증했고, 각국의 참전 군인들도 전쟁이 끝난 후 본국으로 돌아와 수많은 합병증과 원인을 알 수 없는 통증으로 고통스러워하며 죽어갔다.

▲베트남전쟁이 끝난 후에도 수많은 파월군인들은 알 수 없는 통증과 이름모를 병으로 시름했다. 사진은 온 몸이 마르고 굳어가는 병을 앓고 있는 고엽제피해환자의 참상.

전쟁의 아픔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사람들

전후 미국에선 베트남 참전용사들이 고엽제 후유증을 이유로 고엽제 제조회사인 다우 케미컬, 몬산토, 허큘리스, 옥시덴틀, 다이아몬드 샴록 등 7개 화학회사를 상대로 4백억 달러의 집단손해배상청구소송을 냈다. 이전부터 고엽제는 커다란 사회문제로 대두됐었는데, 고엽제피해자들은 일반인에 비해 훨씬 높은 후두암, 갑상선암 발병률을 보였고 피부병, 난청, 신경마비, 성기능 저하 등의 증세에 시달리고 있었다.

1978년 초 미군 기계설비여단에 물자 수송업무를 맡고 있었던 전 헬리콥터 승무원 Paul Reutershan이 'Today'라는 TV쇼에 출연해 "난 베트남에서 죽었소. 그러나 난 그것조차 알지 못했소"라는 발언을 해 시청자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그는 C-123 수송기에 에이전트 오렌지를 가득 싣고 공중에 뿌리면서 매일 제초제 구름사이로 비행을 했다고 증언했다. 공중에서 보면 제초제가 뿌려진 정글이 낫으로 벤 것처럼 움푹 파이면서 홍수림이 고동색으로 변하는 모습을 봤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건강에 대해서는 걱정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왜냐하면 그는 군대로부터 "에이전트 오렌지는 인간과 동물들에게 무해하다"는 말을 전해 들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베트남에서 돌아와 암(癌)을 선고 받았고, 암이 장과 간, 복부까지 번지면서 그해 12월 14일 28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했다.

80년대 미국을 포함한 베트남전쟁 관련국에서 이처럼 거센 파문이 일었지만 한국만큼은 조용했다. 이 같은 폐해에 대해 국내 언론이 보도한 것은 1992년 2월이 최초로 베트남전쟁이 끝난 지 17년이 지난 뒤였다. 미국 다음으로 많은 참전자를 파병한 나라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다른 나라에서도 의아해 했다.

이는 철저한 언론통제 시절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미국에선 한창 손해배상소송이 진행 중이었지만 유신정부는 국민의 귀를 틀어막았다. 민주화의 물결에 발맞춰 데모가 유행을 하던 시절 정부는 이를 어떻게 해서든 알리고 싶지 않았다. 경제개발의 토대가 된 베트남전의 의미에 먹칠을 하고 싶지 않았던 이유도 있었다. 1984년 고엽제 제조사들이 에이전트 오렌지 희생자에게 1억8천만 달러를 주기로 합의했을 때에도 한국의 언론은 이에 대해 보도하지 않았다.

▲1992년 경향신문이 최초 보도한 고엽제 피해환자. 후유증으   로 살이 썩어들어가면서 오른쪽 다리를 절단한 상태.

세계가 떠들썩했지만 한국은 침묵했다

그러던 차 정권에 대한 앙심이 극에 달했던 1992년 경향신문이 사회면에 '월남 참전용사 고엽제 후유증'이란 제목으로 기사를 실었다. 1970년 맹호부대 전투요원으로 참전한 한 고엽제후유증 피해 환자의 이야기를 다룬 기사로 피해자는 점차 다릿살이 빠지고 뼈만 남은 채 몸이 점점 굳어 가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기사가 나자 참전전우회와 보훈처 등 관련기관에는 항의 전화가 쇄도했다. 이유 없이 피부병, 전신마비 등의 증세를 보이던 참전 군인들은 그제서야 삼켜뒀던 울분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정부에 대한 불만도 극에 달했다.

그들의 억울함을 행동으로 표출됐다. 1992년 9월 26일 충남 천안시 독립기념관에서 참전전우 2만명이 모여 대정부 진상규명 요구 행사를 마치고 귀가 중 대한파월유공전우회와 고엽제피해자 등 4백여명이 경부고속도로 하행선 천안삼거리휴게소와 상행선 옥산휴게소 부근에서 관광버스 등으로 도로를 점거해 '정부는 고엽제의 진상파악과 고엽제피해자에 대한 대책을 즉각 마련하라'고 요구하며 3시간 여 농성을 벌인 바 있다. 뿐만 아니라 월남참전으로 인한 고엽제 피해자 중 후유의증에 대한 명예회복촉구를 위해 국가보훈처 등에서 항의시위를 했고, 이들에 대한 명예 회복을 위해 고엽제전우회 시·도지부장들이 삭발 항의를 펼치기도 했다. 비교적 최근이라 할 수 있는 2003년 10월 3일에는 개천절을 맞아 파월용사들이 고속도로를 막고 시위를 벌이다 수 명이 구속된 적도 있다. 지금까지 정신분열증이나 전상 후유증, 비관 자살한 참전자도 수 십 명에 달한다고 고엽제전우회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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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훈처가 조사한 국내 고엽제후유(의)증 환자 현황에 따르면 2011년 9월 기준 79,689명(후유증 25,188, 후유의증 54,442). 20대 초반 젊은 나이에 조국의 부름을 영광으로 생각하며 머나먼 월남전선에서 이름 모를 적과 총칼을 겨누며 싸웠던 전쟁영웅들은 그 전쟁의 상흔을 누구에게도 호소할 길이 없다. 오랜 투병으로 가산을 탕진해 행복했던 가정이 파괴되고,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거나 아내가 도망을 가는 등 말할 수 없는 고통 속에 삶을 이어가고 있다. 정부는 뒤늦게 1992년 '국가유공자 예우 등에 관한 법률'을 근거로 '고엽제 후유증보상지침'을 마련해 고엽제후유증 환자 중 장애등급을 증상의 정도에 따라 고도, 중도, 경도로 나눠 수당을 차등지급하고 있지만, 이러한 보상은 이들의 희생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