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23일 노무현 대통령은 대국민담화를 통해 자이툰부대의 이라크파병을 1년 연장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면서 지금 당장의 철군은 사실상 불가하며 현재 1,200여 명의 파병부대원을 600여 명으로 감소해 점차 모든 병력을 철군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파병 연장안을 발표하면서 ‘국익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며 연말에는 모두 철군하겠다던 노 대통령이 약속을 저버리고 굴욕적인 미국의 파병요청을 받아들인 것이다.
‘이라크의 평화재건을 위한 파병연장은 당연하다.’는 파병찬성론자들은 노 대통령의 파병연장 발표를 일제히 환영했다.    
파병찬성론에 대한 반론제기
파병을 찬성하는 단체든 그렇지 않은 단체든 그들이 주장하는 파병에 대한 견해와 의견은 나름의 타당성과 이유가 있다. 대한민국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은 모두 같겠지만 어떠한 사안에 대해 똑같은 안건을 놓고도 생각의 차가 극명하다.
파병찬성론자들이 주장하는 찬성의 근거와 이유 그리고 이에 대한 반론은 다음과 같다.  
첫째, 파병찬성론자들은 미국을 우리나라의 절대우방국으로 여기며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과거 6·25 당시 우리나라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물심양면 우리를 도와준 우방국이니 우리도 답례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더욱이 한반도의 화해무드가 조성되고 있고, 북핵문제와 6자회담과 같이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미국의 긴밀한 공조가 절실한 지금 미국의 심기를 불편케 해서 좋을 것이 없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지금의 한·미관계가 단순히 우방 또는 절대적 동맹국이라 볼 수 있느냐는 것이다. 미국은 자국이기주의의 대표적 국가다. 한·미동맹이라는 허울 뒤에 감춰진 미국의 본색을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 또 파병연장이 한·미공조를 더욱 공고히 하고 북핵문제를 원만히 해결한다는 의견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다. 실제로 북핵문제와 관련한 적절한 타협점을 찾기도 전에 미국은 북핵에 대한 강경론만을 고수하다 결국 6자회담이 난항을 겪었다. 정부를 비롯한 찬성론자들이 말하는 파병찬성론이 이런 이유에서라면 파병을 해서 그나마 이정도인지 모르겠다. 전쟁 안 난것이 참으로 다행이다.
둘째, ‘제2의 중동특수’라 불리는 전후 복구사업에 대한 경제적 이득과 안정적으로 석유를 공급받을 수 있다는 기대다. 이라크파병을 통해 중동지역과 친밀한 관계를 맺음으로써 이라크 지역에 우리나라의 중동수출 기지를 열고 아울러 원유 공급에도 타 국가보다 우위선상에 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이라크 내 전후복구사업이나 재건사업은 대부분 미국기업이 발주하고 있으며, 석유공급도 현재 미국과 영국이 독점하고 있다. 이는 지난 2월 이라크 의회에 발주된 ‘석유법’이 잘 말해주고 있다. 우리 속담에 ‘떡줄 사람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신다.’는 말이 있다. 미국은 생각도 않는데 안정적으로 원유를 공급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발상은 도대체 어디서 나왔는지.
셋째, 무엇보다 자이툰부대의 주둔을 현지인들이 원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자이툰부대는 전투병이 아닌 의료와 공병부대가 주축으로 평화재건의 목적을 띠고 있어 이라크 주정부에서도 우호적인 입장을 보인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어불성설이다. 과거 일본이 우리나라에 들어왔을 때도 대한제국의 선진화를 위한다는 명분이었다. 그리고 이를 맹종하던 소수 개화파들에 의해 결국 을사조약이 체결됐다. 이는 지금의 이라크 상황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제국주의자들의 약소국 침략방법이 100년 전과 차이가 없다. 이라크의 민주화·선진화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미국은 ‘석유전쟁’을 일으켰고 대부분 친미인사로 구성된 이라크 주 정부를 세웠다. 과거 일본이 우리에게 했던 짓을 미국이 이라크에게 하고 있는데 우리는 지금 미국의 패권전쟁을 북돋우고 있는 꼴이다. 이해관계에 얽힌 이라크 내 친미인사들은 파병을 환영하겠지만 이를 두고 마치 이라크의 모든 국민이 자이툰부대 주둔을 환영한다고 단정 짓는 것은 위험한 생각이다. 지금 당장은 환영할지라도 훗날 역사가 평가할 것이다. 우리 역사가 잘 말해주고 있듯 이라크 교과서에는 우리나라를 미국의 패권전쟁에 가담한 나라로 규정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일본을 적대시 하듯 그들도 대한민국과 미국을 동일시하고 적대시할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넷째, 파병으로 인한 한국의 국제적 위상론을 들고 있다. 우리나라는 OECD회원국으로 경제력 세계 11위, 군사력 15위의 작지만 강한 나라다. 그렇기 때문에 강국의 위상에 걸맞은 파병으로 국제사회의 평화재건을 위해 앞장서고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을 더욱더 드높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오호통재로다. 세계가 이라크전쟁을 비판하고 있고 나토, 유럽연합, 유엔 안보리까지 이를 미국의 패권전쟁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전쟁으로 국제적 위상을 높인다는 생각 자체도 어리석지만 세계적 지탄의 대상이 되는 명분 없는 전쟁에 기어이 파병하는 것은 국제적 위상은커녕 조롱거리 밖에 되지 않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베트남에서 이라크까지
굴욕적 파병의 시작과 끝
광복 이후 우리나라의 굴욕적 파병은 1964년 9월 11일 베트남파병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은 베트남의 공산화, 넓게는 인도차이나 주변국가의 공산화를 막는다는 명분으로 베트남전쟁을 본격화 했다. 그러나 이는 이미 미국의 패권전쟁으로 국제적인 정당성과 명분을 상실, 결국 유엔군의 참여없이 우리나라, 필리핀, 오스트레일리아 등 몇 개국이 연합군이 되어 전쟁에 참가한다.
당시 5·16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대통령은 어떻게든 미국의 신임을 얻어야만 했다. 더군다나 박정희 전 대통령은 여순사건 당시 좌익연루 혐의로 국군에 체포, ‘반란기도죄’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고 이후 재심에서 집행정지의 전력이 있었기 때문에 미국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었다. 그의 극도의 ‘좌익 콤플렉스’ 또한 이러한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그는 당시 케네디 미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베트남파병을 지원하겠다는 의사를 밝힘으로써 미국의 신임을 얻고 자신의 집권을 더욱 공고히 할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제헌 이후 첫 굴욕적 파병이 시작됐다. 처음 재건사업명목으로 파병한 군인을 점차 전투병으로 참전시킴으로써 1964~1973년까지 8년간 32만여 명의 군인을 파병했고 이는 55만 명을 파병했던 미국군 다음으로 많은 병력이었다. 국방부 국사편찬연구소 자료에 따르면 사망자 9,200여 명, 부상자 23,000여 명의 엄청난 사상자를 냈으며 지금도 고엽제 등으로 수만 명이 그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머나먼 베트남에서 수많은 젊은이가 흘린 피의 대가는, 박정희 독재정권을 위한 3선 개헌과 유신헌법이 통과되는 동안 미국의 일관된 침묵이었다. 그리고 이후 헌법에 이중배상금지 조항을 규정해 베트남 참전 군인들의 손해배상을 원천 차단하고 이들의 권리를 묵살했다.  
베트남파병 이후 우리나라는 미국에 대한 종속적 외교관계를 보임으로써 서방국가에 굴욕적인 대한민국을 각인시켰고 이후 수출에 대한 대미의존도는 월등히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물론 당시 상황은 지금과는 많이 달랐다. 미국의 요청에 우리는 거부할 만한 힘이 없었고 정치적 이해관계가 너무 얽혀 있었다. 그렇다고 당시 상황들이 베트남파병에 대한 면죄부가 되는 것은 아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베트남파병을 분명 정치적으로 악용했고, 젊은 희생자들을 독재정권에 이용했다. 그리고 결국 이들에 대한 보상은 이뤄지지 않았고, 베트남파병으로 인한 종속적 외교관계라는 멍에는 씻을 수 없는 치욕으로 남았다.

 
광해군의 중립외교와 파병찬성론자들의 실질론
이라크파병에 대한 찬성론자 측에서도 ‘굴욕적 파병’이라는 것에는 어느 정도 동의한다. 그럼에도 파병을 해야 한다는 실질론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파병불가론의 가장 큰 실질론은 미국이 일으킨 전쟁이라는 것이다. 미국은 우리나라의 우방국으로 우리와는 긴밀한 외교관계를 맺고 있다. 또 파병거부 시 미국에 대한 정치적·경제적 보복 또한 간과할 수 없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이라크 파병찬성론은 마치 임란 이후 광해군의 중립외교론을 보는 듯하다. 그러나 광해군의 중립외교론과는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다. 임란 이후 선조의 뒤를 이은 광해군은 북인과 더불어 쇠약해지는 명나라와 강성해지는 후금 사이의 중립외교를 펼치면서 전쟁 이후 황폐해진 조선을 재정비하고 복구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자 했다. 여기서 간과해선 안 될 것이 임란 당시 명의 도움을 받은 조선으로서는 어려움에 처한 명을 돕지 않을 수 없었고 그렇다고 강성해지는 후금을 자극할 수도 없었다는 것이다. 즉 당시의 급변하는 정세에 비춰보면 중립이라는 것 자체가 용인될 수 없던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광해군은 두 나라 사이의 줄다리기를 훌륭히 해냈다.
지금의 상황은 어떠한가? 우리나라는 어려움에 처한 미국을 돕지 않을 수도, 그렇다고 도울수도 없는 처지라고 여기며 패배자 또는 스스로 미국의 속국쯤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인가? 그렇다면 파병으로 인한 국제적 위상론을 외치던 주장은 모두 헛것이었나? 대등한 한·미관계를 외치던 노무현 정부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미국의 외교술은 치졸하기 그지없다. 정치적이든 경제적이든 미국은 자국이기주의적 발상으로 모든 일을 해결하려 할 것이며, 이는 파병거부로 인한 정치적·경제적 보복과는 별개라는 것이 중론이다. 일본은 이라크파병에서 한발 물러났지만 이에 대한 미국의 제재는 찾아보기 어렵다. 물론 일본과 우리나라의 상황은 다르다. 그렇다 해도 한미FTA의 체결에서 봤듯이 이라크파병이 절대적으로 우리에게 이득을 주는 것도, 또한 철군한다고 해서 우리에게 불이익을 주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현 정부는 미국에 과민반응을 보이며 스스로 심각한 족쇄를 채우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한·미대등관계는 불가능하나...
미국에 대한 ‘조공형’파병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심각한 우려를 표하고 있다. 미국은 세계 초일류 강대국임에 분명하다. 우리나라 뿐 아니라 세계 많은 나라들이 미국의 영향권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세계를 등진 채 그저 미국만을 바라보며 미국이 우리를 보호해줄 것이라 믿고 있을 것인가. 미국은 자신들의 이해타산에 맞출 뿐 결코 우리를 보호해줄 마음이 없다. 그들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고 옹호해줄 것이라 믿는 것은 큰 오산이다. 세계가 급변하고 있다. 급변하는 국제 사회는 다원화된 구조 속에서 서로 긴밀한 협조관계를 맺고 있다. 미국이 강대국임에는 틀림없지만 미국의 힘만으로 세계가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우리도 독립적인 자생력을 길러야 한다. 분명 그 길이 쉽지는 않겠지만 이제는 심각한 고민을 할 때가 왔다. 대등한 한·미관계를 위해 자주적인 길을 고민하고 결단해야 할 적기가 바로 지금이다.

정찬대 기자 chan@newslife21.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