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있어서 베트남 전쟁과 참전 군인들에 대한 기억은 초등학교 때 같은 동네에 살았던 동갑내기 여자 아이에서 시작된다. 작은 아이로만 기억되는 그 친구의 아버지는 베트남 참전 군인이었는데, 그 친구는 아버지의 존재를 부끄러워했었고 난폭한 아버지를 무척이나 두려워하던 것이 기억에 난다. 아버지의 폭력을 피해 종종 우리 집으로 피신오기도 했던 작은 체구의 모녀의 얼굴은 아직도 생생하다.
지난 4월 10일 한나라당 박근혜씨는 베트남전 참전 ‘고엽제전우회’에서 격려사를 읽다가 눈무을 흘렸다고 한다. 박씨는 고엽제로 고통을 겪고 있는 참전군인들에게 ‘애국의 대가’, ‘영웅’ 운운하면서 본인 역시 ‘눈물과 고통을 함께하는 전우가 되겠다’고 했다고 한다. 사람이 본시 눈물 앞에서는 마음이 약해지기 마련이고 아무리 의도된 뻔한 내용의 최루성 영화라 해도 눈물을 피해갈 수 없는 법인데, 박씨의 ‘감동을 자아낸 눈물’ 기사에는 헛웃음만 나올 뿐이다.
미국의 패권 야욕에 동원된 전쟁에 한국 병사들을 총알받이로 내몰아 넣고 그들을 민간인 학살자로, 한국을 전범 국가로 만든 장본인의 자녀가 ‘애국의 대가’ ‘영웅’ 운운은 어쩐지 그 아버지를 닮은 듯하고, ‘눈물과 고통의 동참’은 어쩐지 정치적으로 불순한 느낌만 들 뿐이다.
전쟁이라는 야만적인 얼굴과 그 참혹한 희생의 결과는 종전과 함께 끝나는 것이 아니다. 베트남전의 경우에도 베트남 참전했던 생존 군인들에게는 전쟁 속에서 벌어진 비인간적 살상의 기억이 가져온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부터 고엽제 후유증까지 전쟁이 한 개인이나 한 시점에서 끝나는 고통이라고 보기에는 아직까지도 너무 많은 사람들이 힘겨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 .
그러나 누구보다 베트남전쟁의 끝나지 않은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은 하루하루 전쟁의 기억과 상처를 마주하며 사는 베트남 사람들일 것이다.
지난 6월 18일에는 베트남 고엽제 피해자 3명이 미국 고엽제 제조업체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던 항소심이 열렸다. 2004년 10월에 시작된 이 소송은 2005년 미국 법원의 기각 이후 열린 항소심이다. 고엽제 피해자를 대표해 3명이 제기한 것이라지만, 고엽제는 3세대까지 후유 장애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조사에 의하면 50만 명의 선천성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아이들이 사망했고, 이미 65만명의 어린이가 선천성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다고 한다. 현재도 300만 명 이상이 고엽제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고 이들 중 최소한 100만 명이 심각한 신체장애를 가지고 있으며, 베트남 적십자사 조사에 의하면 15만 명 이상의 어린이들이 고엽제 후유증에 노출되었다고 한다. 한국의 방송에서 가끔씩 보여주는 어린아이들의 기형적인 모습은 5만 명 이상의 기형아이들의 몇 명일 뿐이다.
베트남 전쟁 참전군인들의 증언에 따르면 우비를 입으라는 명령에 입기는 했지만 폭우가 내리는 것처럼 쏟아지는 고엽제를 피할 수 없었다고 한다. 군사적 전략, 전술로 합리화할 수 만은 없는 베트남 전쟁 당시 고엽제의 무차별 살포는 ‘고엽제’라는 다이옥신 성분의 제초제라는 사실뿐만 아니라 살포한 양에 있어서도 비판받고 있는 사실이다. 다이옥신 80그램은 뉴욕 인구 전체를 죽일 수 있는 양이라고 하는데, 미국이 베트남 전쟁 당시 베트남에 살포한 고엽제의 양은 170 킬로였다고 한다. 상상조차 하기 끔찍한 수치지만 베트남 현지에서 마주하는 현실은 그런 ‘상상’조차 비겁한 것으로 느끼게 만든다. 직접적인 피해자는 물론이고 토양에 잔류한 다이옥신에 의해 순환되는 피해들, 그리고 그 끝을 알 수 없이 유전되는 기형의 아이들이 태어나는 현실은 가해자들이 저지른 전쟁범죄의 인정과 그 책임을 물어야 하는 이유이다.
6월 18일 항소심이 열리는 날 베트남에서는 ‘vi sao(dau) em chet – 내 동생은 왜 죽었을까?’라는 노래가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에 울려 퍼지기를 바랐었다.
“ 거리는 여름으로 변하고 친구들도 여름을 즐기는데
왜 내 동생은 여전히 식물같은 생활을 하는가.
거리는 여름으로 변하고 매미는 여름을 불렀건만
왜 내동생은 여전히 아픔속에 있는가
오..불쌍한 나의 동생
이제부터 더 이상 볼 수 없는
오. 불쌍한 나의 동생
이제부터 더 이상 노래할 수 없는
그 놈들이 내 동생을 죽였어요.
그 놈들이 오렌지색 독극물로 죽였어요..
그 놈들이 오렌지색 독극물로 죽였어요..
한번의 급습으로 오래 전 그해 엄마를 죽였고
이제 나에겐 불쌍한 동생만이 남아있어요.
나는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동생을 돌보았어요.
동생을 위해 인생의 어둠을 지우고
인생의 희망을 위해
그러나 지금 남아있는 전쟁의 흔적은
오렌지 색깔의 독극물로 인해 내 동생을 파괴한 것 뿐이예요.
그것은 내동생의 몸에 들어왔어요.
엄마, 할 수 없어요..
사랑하는 동생을 다시 만날 수 없어요.
사랑하는 동생을 다시 만날 수 없어요.“
이 노래가 가슴 아픈 과거의 일로만 기억될 수 없는 것은 아프카니스탄, 이라크, 팔레스타인, 레바논에서 자행된 미국의 불발된 집속탄과 같은 무차별 살상 무기의 오용과 거의 17년 째 계속된 전쟁 속에서 이미 우울한 미래를 예견하는 이라크 민중의 삶이 또렷하게, 너무나 또렷하게 우리 눈 앞에서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이라크와 팔레스타인의 많은 사람들이 눈물로 부르고 있을 수십만, 수백만의 ‘내 동생은 왜 죽었을까...’ ‘내 누이는 왜 죽었을까...’ ‘내 엄마는 왜 죽었을까...’ ‘내 아빠는 왜 죽었을까...’ ‘내 아이는 왜 죽었을까...’가 우리 귓전에 들리는 듯 하다.
참고 자료
‘베트남전쟁이 참전군인들에게 남긴 신체적, 정신적 상처’-우석균
경계를넘어
박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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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동생은 왜죽었을까요?...
김홍인
국회 정무위원회속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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