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러 동시에 부를 수 있는 유일한 나라"...'종전 반세기' 맞았다

베트남전 종전 및 통일 50주년을 보름 앞둔 지난 15일 남부 호찌민시 거리에 금성홍기 장식이 잔뜩 걸려있다. 호찌민=허경주 특파원

베트남이 30일 베트남전쟁(1955~1975년) 종전 50주년을 맞는다. 한때 최빈국이었던 동시에 현대사에서 유일하게 미국과 싸워 승리한 나라. 과감한 개혁·개방으로 가난을 털어낸 뒤 가공할 성장 잠재력까지 갖추게 된 신흥 중진국. 지리멸렬했던 역사를 딛고 '종전 반세기'를 맞이한 베트남이 자축 분위기에 한껏 들떠있다.

붉게 물든 하노이와 호찌민

종전 기념일을 하루 앞둔 29일, 하노이와 호찌민시에선 붉은 물결이 넘쳐났다. ‘남부 해방 50년을 축하한다’는 문구가 적힌 간판이 거리마다 내걸렸고, 사무실, 학교와 식당, 마트 등은 붉은 바탕에 노란 별이 새겨진 금성홍기(베트남 국기) 장식으로 가득 찼다. 평소 케이(K)팝이 흘러나오던 쇼핑몰에는 ‘비엣남 어이(베트남이여)’, ‘못 봉 비엣남(베트남 한 바퀴)’ 등 단결과 애국심을 자극하는 노래가 멈추지 않았다.

"미·중·러 동시에 부를 수 있는 유일한 나라"...'종전 반세기' 맞았다

베트남전 종전 및 통일 50주년을 이틀 앞둔 28일 수도 하노이의 한 사무실에 금성홍기 장식이 걸려있다. 하노이=허경주 특파원

베트남은 북베트남(베트남민주공화국·월맹)이 남베트남(베트남공화국)의 수도 사이공(현 호찌민시)을 함락시킨 1975년 4월 30일을 ‘국가 통일의 날’로 기념한다. 특히 올해는 50주년을 맞아 성대한 국가 기념 행사가 열린다.

30일 호찌민시에선 군인·공안 1만3,000명을 동원한 대규모 열병식이 열린다. 공군은 전투기 에어쇼를 선보이며, 주요 도시 곳곳에선 대규모 불꽃놀이가 벌어진다.

연 9% 성장 이끈 개혁·개방

베트남의 50년은 그야말로 상전벽해였다. 전쟁과 함께 찾아온 가난은 이 나라를 오랜 기간 괴롭혔다. 1986년 도이머이(쇄신) 정책이 빈곤 탈출의 시발점이었다. 경제 노선을 개혁·개방으로 전환하고 외국 기업을 적극 유치했다. 1990년대 들어 연 5~9%의 고도 성장을 거듭하며 신흥공업국으로 부상했다. 100달러 미만이었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50년 만에 4,600달러로 치솟았다. 전쟁의 상흔을 지우고 중진국으로 도약한 점에선 한국과도 닮았다.

"미·중·러 동시에 부를 수 있는 유일한 나라"...'종전 반세기' 맞았다

베트남전이 끝난 1975년 4월 30일, 당시 승리를 거둔 북베트남 군이 탱크를 타고 사이공(현 호찌민시)의 한 거리를 행진하고 있다. 남베트남 시민들이 이를 지켜보고 있다. 호찌민=AP 연합뉴스 자료사진

국제사회에서의 위상도 옛날 베트남이 아니다. 2023년부터 올해까지 조 바이든 전 미국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등 초강대국 정상들이 앞다퉈 베트남을 찾아왔다. 전세계가 주목하는 경제 성장 잠재력 때문이다. 남중국해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중국과 이를 견제하려는 미국 간 갈등 격화로 전략적 요충지인 베트남의 몸값이 상승한 덕도 크다. “미국, 중국, 러시아 정상을 동시에 불러들일 수 있는 유일한 나라(미국 CNN 방송)”라는 평가가 과하지 않다.

적국에서 사돈의 나라로

한국과의 관계도 유별나다. 한국은 베트남전에 32만 명의 장병을 파병했다. 이 중 5,000여 명이 전사했다. 한국이 건국 이후 처음이자 최대 규모 파병을 한 곳이 베트남이다.

"미·중·러 동시에 부를 수 있는 유일한 나라"...'종전 반세기' 맞았다

1966년 1월 2일 베트남전에 파병된 청룡부대원들이 부상병을 헬기로 옮기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한국은 1956년 남베트남과 수교했으나, 1975년 북베트남의 통일 이후 국교가 단절됐다. 이후 1992년 베트남과 수교를 맺으며 양국은 과거의 앙금을 털고 화해와 협력의 길로 접어들었다.

지난 33년간 경제 협력은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뤘다. 현재 약 1만 개의 한국 기업이 진출해 있다. 한국은 누적액 기준 베트남 최대 해외직접투자(FDI) 국가다. 양국은 2022년 외교 관계를 최고 수준인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시켰다.

인적 교류도 폭발적으로 확대됐다. 수교 직전까지만 해도 한국에 거주하던 베트남인은 단 두 명에 불과했지만, 현재는 20만 명을 넘어섰다. '결혼 이주'로 생긴 한·베트남 가정은 수만 가구에 이른다. 50년 전 적국이 지금은 사돈지간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