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월남전 고엽제 환자로서 대장암 수술을 받고 보훈 성금 46만원으로 생활하고 있다. 아내는 마을 재활용 분리수거장에서 하루 2만5천원을 받고 일을 한다. 10년 전 양쪽 시력을 잃은 장모님 연세는 86세이다. 우리 셋은 크게 어려움 없이 부지런히 살았다. 고추도 30~40주 심고 개도 몇 마리 키워 팔아서 가계에 보태며 먹고 입는 걱정은 하지 않고 살았다. 그런데 작년 여름방학 때, 딸이 외손녀 미소와 외손자 소망이를 데리고 와서는 사위와 이혼을 했으니 애들을 맡아 달라는 말만 남기고 어디론가 가버렸다. 방학이 끝나면 애들을 찾으러 오겠지 기다렸지만 나타나지 않았다. 조그마한 방 2칸에서 다섯 식구가 생활하다 보니 주거 공간이 너무 협소해서 여러 면으로 불편한 사항이 많았는데 동네 분들의 도움을 받아 부랴부랴 방 한 칸을 지어 애들을 기거시켰다.

초등학교 2학년이던 소망이는 한동안 거의 매일 아침에 깨어나서부터 밤에 잠들기 전까지 울기만 하였다. 그 녀석을 안고 함께 울어버린 날들이 얼마나 됐을까? 엄마가 그리워 우는 철부지 소년에게 잊고 살자고, 용감해야 한다고 타이르는 이 할아버지의 간절함이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었는지 중단했던 태권도장에 다시 보내 달라고 해서 어려운 형편이지만 누나 미소와 함께 보냈다. 태권도장 관장님도 사정을 어렴풋이 알고 아이들을 따뜻하게 대해 주셨고 교회도 빠뜨리지 않고 다니게끔 배려를 해주셨다.

미소는 소망이보다 두 살 많지만 대단할 정도로 대견스럽다. 엄마가 보고 싶다거나, 찾아본다거나, 언제쯤 올거냐는 등 전혀 내색을 하지 않았다. 스스로 참느라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을까? 학교생활도 4학년 2학기 때 회장직을 맡았고 컴퓨터 기능 2급 자격증 취득, 사물놀이 최우수상 수상 등 전교에서 알아주는 학생이다. 금년 5학년 1학기 때는 부회장직을 맡았는데 누가 신경을 못써주는 터라 성적이 약간 떨어졌다. 옆에서 껴잡고 공부를 가르쳐야 하는 줄 알면서도 생각뿐이다.

소망이는 3학년 1학기말 시험에서 우수상을 수상했다. 방학식을 끝내고 돌아오는 소망이가 길 어귀에서부터 “할아버지 할아버지”를 외치더니 책가방 속에서 상장을 꺼내 자랑하듯이 보여주었다. 신경 써주지 못했는데 그 만큼이라도 해낸 것이 자랑스러웠다. 사랑으로 자라야 할 때인데 엄마의 사랑이 부족해서인지, 스트레스를 먹는 것으로 푸는 것인지 배고픔을 참지 못한다. 요즘은 집에 오자마자 고추장에 참기름을 넣어 밥을 비벼 먹는다. 누가 딱히 챙겨줄 사람도 없으니 말이다. 너무 많이 먹어서 비만체질이다. 아직도 응어리가 남아 있는 걸까? 그렇지 않으면 좋으련만.

오늘도 아이들은 길모퉁이에서부터 할아버지를 부르며 땀범벅이 된 얼굴을 내밀겠지. ‘정’그것은 인류 최고의 과학을 초월하는 생의 향기라고 했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고 했던가. “미소야, 소망아, 굳세게 살아다오. 서로 사랑하면서 살자꾸나. 할아버지가 이 세상에 있는 한 너희들을 지켜봐 줄게.”

출처 : 가정위탁센터 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