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적으로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 국공립병원 중 하나인 보훈병원에서는 실제로 2년째 발생하고 있다.
최근 정부에서 운영하는 '나라장터'를 통해 서울보훈병원을 비롯 전국에 산재한 5개 보훈병원에서 사용될 의약품 구입을 위한 공개입찰을 실시한 결과,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경이로운 낙찰 가격을 기록했다.
이번 보훈병원에서 사용될 의약품의 낙찰 가격을 살펴보면 제약사가 '최소한 이 정도 가격은 받아야 한다'며 정부와 협상한 결과 결정된 보험약가에 턱없이 못 미치는 것은 물론이고, 낙찰가격이 10원 단위를 넘어서 1원 단위인 품목도 있다.
◇ 제약사, 90% 원외 처방을 위해 손실 감수
당뇨병 등 주요 질환에서 대표적으로 사용되는 약의 보험약가와 보훈병원의 낙찰가를 살펴보면 그 차이가 얼마나 큰 지 알 수 있다.
고혈압약 중에서 가장 많이 처방되는 노바스크는 보험약가가 418원인데 비해 낙찰가는 보험약가의 10% 를 간신히 넘긴 45원에 낙찰됐다. 혈관에 콜레스테롤이 많아 생길 때 쓰는 고지혈증약 조코의 경우에는 보험약가(1219원)의 겨우 0.2%에 해당하는 2원에 낙찰된 것으로 드러났다. 해열진통제로 유명한 아스피린 역시 심혈관약으로 단 돈 2원에 낙찰됐다.
하지만 정작 해당 제품을 공급하고 있는 제약사들은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올해도 무사히 보훈병원에 제품을 납품할 수 있게 됐다며 안도하는 모습이다. 반면 일부 제약사들은 유통질서를 흐리는 도매업체에게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의약품을 공급하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부는 병원과 제약사가 직접 거래를 하게 되면 불법 리베이트 등을 주고받을 우려가 높기 때문에 100병상 이상의 병원은 제약사와 직거래는 금지하고, 도매업체(간납도매상)를 통해서만 의약품 등을 공급 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문제는 2년 연속 낙찰 가격이 보험약가에 훨씬 못 미치는 상황에서도 정상 제품이 도매업체를 통해 병원에 납품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보훈복지공단(이하 공단) 물류지원팀 관계자는 "올해는 지난해와 비교해 더 심각하게 저가로 낙찰됐다"라며 "하지만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낙찰 받은 도매 업체에서 기한 내에 정상적인 제품 잘 공급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나 제약회사 관계자는 "올해부터 의약품유통정보센터가 출범해 의약품의 유통은 물론 입찰을 통해 병원으로 공급되는 의약품의 가격까지 모두 노출된다"며 "이런 방식으로 계속 진행이 된다면 약국에 공급하는 가격과 병원에 납품하는 가격 둘로 가격이 이원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이어 "저가로 낙찰받은 도매업체들이 해당 병원에서 필요한 수량 이상을 공급받아 그 중 일부를 다른 도매상이나 약국 등에 유통시켜 의약품 유통 질서를 어지럽히기도 한다"며 "이번 기회를 통해 제약사 내부적으로 상식이하의 저가를 요구한 도매업체에 의약품을 공급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반대로 또 다른 제약사 관계자는 "지난해에도 그랬듯이 대부분의 제약사가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원외처방 때문에 의약품을 해당 도매상에 공급할 것"이라며 전혀 다른 주장을 펼쳤다.
그에 따르면 입찰을 통해 구입하는 의약품은 병원 내 입원환자를 대상으로 사용하는 의약품으로 전체 병원에서 나오는 처방의 10 %이내라고 한다.
나머지 보험급여가 인정되는 병원 외 외래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처방의 90%는 원외처방으로, 병원에 제품의 처방을 계속 하기 위해서는 우선 원내처방이 이뤄져야한다고 설명했다.
즉 제약사 입장에서는 보훈병원과 같이 규모가 큰 병원의 경우 매출확대를 위해 10%의 원내 처방 리스크를 감수하고 90%의 원외처방을 위해 의약품을 공급한다는 것이다.
◇ 상식 이하의 낙찰가, 공급이 가능한 이유
그렇다면 이처럼 초유의 1원짜리 의약품 낙찰 사태가 2년 연속 계속되는 이유는 뭘까.
현 제도상 보험 상한가보다 낮은 가격으로 약국에 의약품을 공급하면 실거래가 상환제도를 통해 보험약가 인하요인으로 작용하지만 입찰병원의 의약품 공급가는 실거래가 상환제에서 제외된다.
국내 중견 제약사의 한 관계자는 "병원 원내공급 뿐만 아니라 원외처방분을 고려해 상식 이하의 가격임에도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의약품을 공급한다"며 "제약사의 입장에서는 적은 손해 때문에 더 큰 이익을 포기하는 제약사는 현실적으로 거의 없어 낙찰받은 도매업체에서 반대로 제약사에게 공급을 요구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어 실거래가 상환제도에 대해 "이번 보훈병원의 사태에서도 짐작 할 수 있듯이 공개 입찰의 경우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가격이 유지가 안됨에도 실거래가 상환제에서 제외가 되는 것은 모순"이라며 "이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제공되지 않으면 이러한 사태는 계속 일어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번 보훈병원 입찰에 참가한 한 도매업체 관계자 역시 "공개입찰을 실시하는 국공립병원의 입찰 가격이 해가 갈수록 점점 낮아진다"면서 "도매 업체 내부에서 입찰을 두고 치열한 심리전이 지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도매 업체 관계자도 "입찰을 통해 의약품을 납품받는 병원은 보훈 병원을 비롯해 국공립병원과 사립병원 중에서는 아산병원과 삼성의료원 정도라며, 입찰이 아닌 수의계약을 통해 의약품을 납품하는 병원은 입찰에서 낙찰된 비 정상적인 가격이 아닌 보험약가 수준으로 납품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같은 제약사에서 생산된 동일한 의약품임에도 약국에 공급할 때는 1000원대 약이 병원에서는 10%도 안되는 가격에 공급되는 심각한 '불균형'이 계속되고 있는 셈이다.
권선미 기자 sun3005@mdtoday.co.kr
<저작권자ⓒ '한국언론 뉴스허브' 뉴시스통신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유상우(기자)
최싱영
최해영
송인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