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길거리에서는 종이를 들거나 팻말을 세워두고 구걸하는 이들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은 한결같이 '베트남 참전 용사'라는 말을 씁니다. 이 장면을 목격할 때마다 저는 의문이 들었어요. 한국도 베트남 전쟁 때 군대를 보냈고 참전자 수가 적지 않은데, 한국에서는 '베트남 참전 용사'라고 써붙이고 자신을 드러내는 노숙자들을 본 적이 없었거든요. 왜 그럴까요?

예전에는 한국이 가족 관계가 긴밀해서 군인들이 돌아왔을 때 가정 안에 흡수되고 그들의 상흔도 그 속에서 다뤄졌다는 식의 설명을 들었습니다. 물론 패전한 채 반전운동이 극렬했던 미국 땅으로 되돌아가면서 상처받은 미군 군인과, 조국을 부흥시킨 영웅의 귀환 같은 대접을 받았던 한국 군인의 상황은 많이 달랐을 거고요.

그런데 저는 베트남 참전 군인들의 수기를 읽으면서 이들 상당수가 인간의 몸과 정신이 견뎌낼 수 있는 한계치를 넘어선 경험을 했고, 제가 그런 일을 겪었다면 저 역시 회복 탄력성을 잃어버렸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그런 일을 겪고서 사회로 복귀해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회의적입니다. 미국의 베트남전 참전 군인들 중에서 적지 않는 이들이 병원에서 '치료 불가' 판정을 받고 마약 같은 처방전으로 삶을 영위했어요. 

저는 한국의 베트남전 참전 군인이 미군과 같은 방식은 아닐지라도 어느 정도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추측컨대 우리 주변에 넘치게 많은 알코올 중독이나 가정 폭력, 사회 부적응의 배경에는 이런 역사적 사건들이 직간접적으로 연루되어 있을 겁니다. 미국과의 주요한 차이라면 우리 사회는 최근까지도 마음이 아픈 것에 대해 '질병'으로서 '치료나 도움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부재했던 데 있지요. 

해리 윌머(Harry Wilmer)라는 미국 텍사스 출신 정신과 의사는 베트남 참전 군인들을 치료하면서, 다른 의사들이 왜 이들에게 꿈 이야기를 묻지 않았는지 의아해했어요. 당시에 이런 사람들에게 해주는 치료란 약물 처방이 주였지요. 

해리 윌머는 베트남 참전 군인들을 모은 후에 꿈을 나누는 집단 치료를 시도했어요. 한 팀을 두 그룹으로 나눈 후, 한 그룹은 안에 둘러앉고 나머지 한 그룹은 그 그룹의 밖에 둘러앉게 했지요. 안쪽 그룹 사람들은 자기 꿈을 이야기하고, 바깥쪽 그룹 사람들은 그걸 듣습니다.

바깥쪽 그룹 사람들이 안쪽 그룹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큰 귀가 되어준 셈이지요. 그런데 이것만으로도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어요. 윌머의 이 선구적 작업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다루는 일종의 교과서 같은 모델이 되었습니다.

꿈은 말로 채 표현할 수 없는,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하는 경험과 거기에서 비롯된 심리 상태들까지 나름의 방식으로 표현해줍니다. 누군가가 그 소화 안 되는 상황을, 그 혼란스럽고 억장 무너지는 심정을 귀담아듣고 공감해주는 것에서부터 기적 같은 변화가 시작됩니다.

기본적으로는 누군가가 "나 이렇게 기막히고 그래서 아프다"라는 이야기를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그걸 진심 어린 마음으로 듣고 느끼고 공감해주는 것이 비법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