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66
이름: chltkddud
2012/12/27(목)
조회: 1576
Saigon ,강에서 흘러~흘러 떠나온 길  

한호성글

Saigon ,강에서 흘러~흘러 떠나온 길..

Saigon강에서 그때생각 최선을 다하고 힘들었지만 누가 알아줘야지요. 이렇게 아름다운 강구경도 못하고 전사 했다면 조금은 섭섭한 마음들것입니다.

그래서 추억 얘기가 최고이지요.

비 내리는 날 매복 밤 전투를 빠질 수 있는 그런 부대에서 단 하루만이라도 근무해 보고 싶었었다..비 오는 날 묘지 옆에 질퍽대는 진흙탕 물에서 낮선 죽은 자와 함께 하는 것 왜 그런지 편안하였다.왜 그랬을까?

그때 매복 장소 묘지를 정확이 안다.

그날 밤 물속 논을 새벽길에 걷고 있는 베트공 5명 남녀였다.이날의 얘기는 언제인가 하게 될 것 사연이 많은 곳 첩보전이전개 된 장소 북한군 개입 미녀첩자 월맹군 첩보부대 장교를일망타진했던 그날 매복묘지였다.

이 묘지를 지난번 찾아봤지만 겁이나 눈치 안채게 주변만보고 말하지 않았었지만 요번엔 그 동내에서 잠자려고 한다.오작교 작전 때 약속 하고 못 맛난 소녀의 집근처이기도하다.

한 까 페 Saigon~Mui Ne~Nha Trang 화려한 2층 버스이다.밤에 타고 자고나면 목적지에 도착한다.

고대 하노이수도 그러니까 하노이가 1.000도시라면 그 이전천년이 넘은 곳 (닌빈 hoa lu 멋진 곳이다.

보시다 십이 시내길 변함없지만 걷기운동장소 강과, 미대사관막땐찌 길..

딸래미 보조출연 여아이이지만 겁이 하나도 없다.사회대중 접촉 과정에서 대범하다.그때 혼바 산 등산길...

어려도 속이 깊어질 수 있는 길... 힘들고 어렵고 고통스런 일 육체적 정신적 고통도 느껴 보는 것이 좋다. (An Khe에서~~~~~

인간이 한번 낳고 한번 죽는 것 인데 전쟁이라는 비극의장해가 막긴 했지만 생각을 떨 구지 못하고 산다.

한이 되는 것 있다.

19세에서 22세 청춘시절 전쟁 때 위험 무릎 쓰고 처녀가 비 오는 날 우이입고 공책 연필 나에게 내밀었다.말은 안통하고 그것이 사랑의 표시였는데 전쟁터 군인으로서뛰쳐나가 만날 수 없었다.(그렇다고 누가 제재한 것도 아니고내 스스로 거절 하였다.그때가 20세 되었을 때 오작교 전투 끝나고 만나기로약속 했지만 못 만나 지금도 한이 되어있다.

3년간 정글 속 에서 남몰래 많이 울기도 했고 몰골이 너무 처 참 내처지가 좀 가엽게 느껴졌다.

지금생각은 살아남아서 이지만 (나는 소총 병 이였던 것이 자랑스럽다.누구의 도움이나 의지 없이 살았다는 생각 고독했었다.전장의 고독은 잔인해서 가슴속 깊이 파고들었다..

지옥에서 견디려면 또 살아남아 숨 쉬려면 독한 마음을 품기로 했었다.월남전 참전은 모두 내가 결정 원했고 국가에 충성보다는 내 부모형제 나에 대한 복수의일념이 엇기 때문에 국가나 특정누구 나 자신에게도 원망할 수가 없다..

지금월남에서 살고 있지만 월남사람이 죽기도 했지만 나에게는 죄스런 마음 같은 것은 없다.

미안한 감은 있어 그들을 위해 작은일 감당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산다.

가 싸울 적에 월남사람을 떠올리고 싸운 적은 없고 얼굴 없는 공산주의와 싸웠을 뿐이다.

강력한 복수심 인내심 없이는 고통스런 개릴 라 전을 이기고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됐던 것 같다.

내 중대원은 거의 돌아가지 못하고 낮선 월남 전선에서 구천을 떠돌 고 있기 때문이다.

나도 고국에서 살고 싶지만 나만 돌아가서 한국에서 사는 것 마음이편하지 못하다.

그때 3년이 지나도록 연장 또 연장 하며 살아서 돌아가고 싶지 안 앗 지만 죽지도 안고 어찌 내 마음이 편해 잠이 오겠습니까? 60이 넘도록 살았지만 뼈에까지 세 겨진 상처가 어떻게 지워지겠습니까? 흘러~흘러 언젠가는 ~~~~~~~


1.53.220.183 한호성: 전쟁을 경험 하고나서 인간생명 소중함을 느끼며 살고있다.
-[12/27-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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