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활건 군수품 수송 - 베트콩 기습에 철모쓰고 총쏘며 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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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사활건 군수품 수송 - 베트콩 기습에 철모쓰고 총쏘며 일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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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문화일보
▣ 글=박영출기자 equality@munhwa.com
color=#993366>1966년 여름. 베트남 퀴뇬항에서 미군의 군수물자를 가득 실은 한진상사 수송단은 베트남 전쟁의 최대 격전지인 앙케로 향하고 있었다. 트럭 속에는 박격포탄과 탄약을 비롯한 전략물자와 식료품이 가득 실려 있었다.
한차례 폭우가 쏟아졌다. 와이퍼가 연방 트럭의 앞유리를 닦아냈지만 길은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진흙탕을 힘겹게 헤쳐나가는 트럭의 엔진음이 정글의 적막을 타고 흘렀다. 그때였다. “드르륵, 드르륵, 탕탕탕.” 어디서 날아드는지도 모르는 총탄이 정글의 고요를 뒤흔들었다.
곳곳에서 들려오는 비명소리. 수송로는 금세 전쟁터로 돌변했다. 인근 미군부대에서 지원병이 급파됐지만 베트콩은 이미 사라진 뒤였다.
사망 3명, 중상 5명. 일터가 아니라 전쟁터였다.
‘죽을 각오로 일해서 목돈 한번 만져보겠다’던 현장 인부들의 각오는 동료의 주검 앞에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조중건 전 대한항공 부회장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전한다.
“베트콩의 기습이 시작되자 아무도 운전대를 잡으려 하지 않았어요. 죽을 각오로 왔지만 실제로 죽을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수송단도 철모를 쓰고 M16 소총으로 무장했습니다. 베트콩이 공격하면 곧바로 응사했죠.”
1968년 설(구정)을 기점으로 베트콩의 대공세가 시작되면서 막사에도 수시로 포탄이 떨어졌다. B42라는 소형 로켓포탄이었다. 또 숙소 부근에서 민간인 복장을 한 베트남 부대가 시한폭탄을 장착한 차를 폭파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하지만 이보다 더 무서운 것은 정글의 독충과 이름 모를 풍토병이었다. 군수물자를 싣고 베트콩을 피해 정글을 돌고나면 시름시름 앓아 눕는 직원이 속출했다.
베트남에서 한진상사가 맡은 업무는 퀴뇬항에서 군수물자를 하역해 수십마일에서 200마일까지 떨어진 한국 맹호사단과 2개의 미군사단에 보급하는 것이었다. 당시 퀴뇬항에는 군수물자를 가득 싣고 하역을 기다리는 배들이 30여척씩 대기하고 있었다. 하역시설이 그만큼 빈약했다.
군수물자는 부지런한 한진상사 직원들의 손에 의해 신속하게 전선의 각 부대로 전달됐다. 한진상사가 첫 임무로 맡은 1470t의 군수품을 운반하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32시간. 미군들은 “예전같으면 1주일은 족히 걸렸을 것”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깔끔한 일처리 역시 현지에서 호평을 받았다. 선박 접안시설이 부족해 늘 물건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던 퀴뇬항은 말끔하게 정리됐고, 군수품을 실은 선박이 외항에서 하역을 기다리는 일도 없어졌다.
철저한 현지화 정책도 한진상사가 베트남에서 성공한 중요한 이유로 꼽힌다. 전쟁이 예상보다 길어지면서 베트남 사람들 사이에서는 한국인들이 이곳에 와서 돈을 버는 것에 대한 반감이 일고 있었다. 한진상사는 의무실을 설치해 현지인들에게 무료 진료를 하고, 원자재로 쓰고 남은 나무더미는 인근 주민들에게 연료로 나눠줬다. 또 베트남 현지인에게 물의를 일으키는 직원이 생기면 즉시 귀국 조치했다.
한진상사는 현지인 고용도 대폭 늘렸다. 전쟁통에 의식주 해결이 어려웠던 그들이었다. 한국인 직원들을 위해 지은 김치 공장에도 베트남 여성들을 우선적으로 고용했고, 작업장 내에 기술학교를 설립해 현지 주민들에게는 무료로 기술 교육을 제공하기도 했다. 베트남에서의 사업이 한창 절정에 달했던 1968년 당시 한진상사 베트남 직원 4000명 가운데 현지인이 1000명에 달했다.
한진상사의 현지화 정책은 입소문이 붙어 베트남인들 사이에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 한진 직원에 대한 베트남 부대의 기습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반미 시위가 거세게 일어났을 때도 한진만큼은 피해를 당하지 않았다. 이 사실을 놓고 오해도 적지 않았다. 황창학 고문은 “월맹군이 한진만 공격을 하지 않아 한때 ‘한진과 월맹군이 내통하고 있다’는 유언비어가 돌았을 정도”라고 회고했다.
한진상사가 1966년 3월10일 주월미군사령부와 처음 맺은 계약 규모는 790만달러. 이듬해 5월 성사된 2차 계약은 3400만달러에 달했다. 한진상사가 1971년까지 베트남에서 벌어들인 외화는 총 1억5000만달러에 이른다. 깔끔한 일처리로 한진상사는 미군으로부터 최고 대우를 받았고, 한진상사 때문에 미국 업체들조차도 전쟁이 끝날 때까지 퀴뇬항을 넘보지 못했다.
생명을 담보로 일한 한진상사 직원들도 생명수당을 포함해 상당한 임금을 받았다. 1968년 3월부터 4년 동안 퀴뇬에서 근무한 최원표(62) 한진해운 고문은 “당시 입사 2년차였는데 현지에서 첫 월급이 280달러였다”며 “1년치를 꼬박 모으면 서울 은평구 갈현동에 국민주택 한채를 살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1970년 1인당 국민소득(GNP)이 254달러였음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목돈이었다.
박영출기자 equality@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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