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219
이름: 최상영
2017/5/7(일)
조회: 1108
국군 첫 파월부대, 비둘기부대 파병 50주년, 전쟁터에 평화를 전달하다  

 

 

 

여러분은 평화의 상징이라고 하면 무엇을 떠올리나요? 대부분 평화를 나타내는 동물로 널리 알려진 비둘기를 떠올리겠죠? 바로 이 비둘기를 부대의 상징으로 내걸었던 우리나라의 부대가 있습니다.

 

주월한국군 건설지원단, 비둘기부대가 그 주인공입니다. 비둘기부대에 대해 많은 분들이 들어보지 못했을 것 같은데요. 쉽게 설명 드리자면 그 동안 대한민국이 세계 각국의 평화유지를 위해 파병했던 상록수부대나 자이툰 부대와 같은 부대들의 시초가 되는 부대라고 생각하시면 쉽게 이해하실 수 있으실 거라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비둘기 부대에 대해 조금 더 알아보도록 할까요?

 

백색 바탕의 천에 중앙에 방패형의 문양에 적색 바탕에 백색으로 "건설"이라는 글자와 청색 바탕에 백색의 비둘기가 날고 있는 모습을 적색의 무궁화 관이 감싸고 있는 형태이다. 하단에 흑색의 "건설지원단"이라는 글자가 있다.(사진출처. 전쟁기념관 홈페이지)

 

베트남으로 날아간 비둘기


우선 비둘기부대 설립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비둘기부대 파병에 앞서서 1964년 대한민국 정부는 미 대통령 린든 B. 존슨의 요청에 따라 130명으로 구성된 제101 이동외과 병원과 10명으로 구성된 태권도 교관단을 베트남에 파견하였습니다. 이후 통킹만 사건이 일어나고 미국은 대한민국에 후방 지원 부대의 파병을 요청하였고, 이에 응하여 대한민국은 1개 공병대대, 1개 경비대대, 1개 수송중대 및 1개 해병·공병 중대로 구성된 2,000여명 규모의 한국군사원조단 비둘기부대를 창설하여 1965310일 미 해군 수송함에 승선시키고 미 제 7함대 소속 함정과 함재기의 호위를 받으며 인천항에서 사이공을 향해 출항시켰습니다. 비둘기부대는 316일 사이공에 도착한 뒤, 사이공 동북쪽 22km에 있는 지안에 주둔하여 건설 지원임무를 수행하기 시작하였습니다.

 

1965310일 약 2,000여명 규모의 국군 비둘기부대가 인천항에서 사이공을 향해 출항하였다.(사진출처. 국방일보 자료.)

 

1965316일 베트남에 전부대가 도착한 뒤 비둘기부대는 불명확한 지형조건하에 자체 능력으로 경계 및 수색활동을 전개하면서 도로 및 교량 보수에 착수하였으며, 42일에는 처음으로 기습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월남의 개전을 위한 지원이었지만, 전쟁을 겪고 있던 베트남 사람들에게 한국군의 파병은 그렇게 반가운 일이 아니었는데요. 때문에 비둘기 부대는 대민지원에 집중해야 할 뿐 아니라 작업지역에서는 물론 주둔지에서도 항상 적의 기습에 대비해야 했습니다. 철조망과 지뢰지대를 구축하면서 5중방어선으로 이루어진 주둔지 기지화 작업에 착수하며 장병들의 안전에도 기여하는 임무 또한 충실히 수행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합니다.

 

비둘기 고마워요 


험난했던 파병 초기 이후 베트남의 환경에 정착하고 나서는 비둘기부대는 한국군사원조단에서 주월한국군 건설지원단으로 이름을 바꾸며 전쟁으로 인해 파괴된 환경에서 고통 받는 베트남 국민들을 위해 대민지원에 더욱 힘을 썼습니다. 당시 비둘기부대는 베트남 주민들의 참된 벗이 되자는 뜻으로 진정한 친구가 되기 위해 인근 마을과 자매 결연을 맺고 각종 마을 행사에 참석하고 환자 위문과 농경을 지원하는 활동 등을 통해 월남지역사회에 공헌하였습니다.

그 중 눈에 띄는 활동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주민들의 자립을 도와 경제발전을 시키기 위해 각종 기술 습득을 돕는 비둘기 기술학교활동입니다. 이곳에서 주민들을 대상으로 발전기와 엔진에 대한 교육과 재봉, 재단과 같은 교육들을 했다고 하니 단순히 원조를 넘어서 스스로 일어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정말로 의미 있는 활동이었던 것이죠.

 

 

이러한 비둘기부대의 정성어린 노고에 월남사람들 역시 따듯한 보답해주었습니다. 비둘기부대를 향한 따듯한 보답은 어떤 것이었는지 간단한 일화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비둘기부대의 병영 앞에 있었던 디안이라는 주둔지의 마을 사람들이 수녀들을 앞세우고 부대의 정문을 향해 가까이 다가오는 시위를 진행했습니다. 비둘기부대원들은 이런 사람들의 모습을 경계했는데요. 하지만 이 활동은 바로 비둘기부대 장병들에게 감사의 표시를 하기 위한 선의의 발걸음이었습니다. 이뿐 아니라 월남의 주민들이 비둘기부대원을 만나면 항상 입에 담았던 말이 있습니다. 바로 깜은 꼬라는 말입니다. ‘깜은 꼬라는 것은 우리말로 비둘기 고마워요라는 의미입니다. 자신들을 물심양면으로 도왔던 비둘기부대원들에게 작지만 진심 어린 감사의 뜻을 전했던 것이죠. 결국 이 말은 장병들에게 익숙한 말이 되었고, 월남 사람들의 입에서도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감사의 표현이 되었다고 합니다.

 

농토개발, 학교, 댐 및 급수시설

1,753km에 달하는 도로와 173개소의 교량 등 건설


이외에도 계속해서 비둘기 부대는 도로 신설 공사를 비롯하여 주둔지에 다리를 놓아주고, 학교 교실을 지어주고, 대민진료소를 지어 주민들을 치료해주었으며, 태권도를 보급하는 등 파괴된 공공시설 복구와 대민지원 부분에서 전력을 다해 힘썼습니다. 이러한 노력들이 있었기에 19733월 귀국 시까지 8년 동안 비둘기부대는 자유월남 곳곳에서 건설지원단으로 본연의 작전임무와 함께 구호 및 건설 활동 등 다양한 민사작전으로 한국군의 위상을 높이는 것은 물론 초반 냉랭했던 반응과 다르게 월남국민들에게 차츰 친근한 한국군의 인상을 심어주었습니다.

비둘기부대가 베트남에 건설한 교량. 비둘기부대는 월남에서 1,753km에 달하는 도로와 173개소의 교량 건설하였을 뿐이나 이외에 여러 파괴된 공공시설 복구를 위해 힘썼다. 사진출처.

 

우리가 몰랐던 비둘기부대에 대해 재미있는 스토리와 활약상 등을 살펴보았는데 어떠셨나요? 현대사를 겪어오며 이미 큰 전쟁을 치렀던 나라에서 우리와 같은 처지에 놓인 타국의 전쟁에 참전해 그곳에서 평화를 전파했던 비둘기부대원들. 그들이 그러한 희생을 기꺼이 해낼 수 있었던 것은 월남주민들의 모습에서 조국의 모습을 보았고 자신들의 감정을 이입했기에 가능했던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느새 50주년이나 흘러버린 옛 이야기가 되었을지 모르지만 그들 보여준 선의의 희생과 평화의 모습은 가슴 깊이 새겨 언제까지나 고이 간직되어야할 것들임에 틀림없습니다.

 

비둘기부대가 사이공에 건설한 팔각정. 이 팔각정의 이름이 평화정이다. 그들은 진심으로 베트남에 평화가 찾아오길 기원했던 것으로 보인다. 사진출처



출처: http://mpva.tistory.com/3274 [국가보훈처 대표 블로그 - 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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