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o, 139 이름: 최상영 2009/2/7(토) 조회: 1875 | |
 비둘기부대,주월 한국군 사령부 비둘기부대,주월 한국군 사령부
- 내용 -
1. 월남 파송 발령
2. 비둘기부대 J-2(정보참모)
3. 선발대 출발
4. 비둘기부대 주둔지(Di-An)
5. 김재룡 대령과 한국 특파원
6. Viet-Cong의 야간기습
7. 해병대 창설 16주년 기념Party
8. 한국출장의 무산
9. 심야의 전속부관의 취중 난동
10. 참모장과의 언쟁
11. 주월 한국군 사령부
(1) 인사참모부 보좌관
(2) 청룡부대의 월남 도착
(3) 육군 참모와의 언쟁
(4) 월남 1등 명예훈장 수상
- 끝 -
1. 월남 파송발령
미국 해병학교(Junior School MCS Quantico, Va. 1963년6월-64년6월)에서 1년 간의 군사교육과정을 수료하고 오랫 만에 진해에서의 나의 교관 생활은, 또한 가족과 함께 지내는 단란한 생활은 그리 오래 가지 아니 하였다. 그것은 대한민국의 건국 후 처음으로 해외로 한국군을 파송하는 월남파병문제가 나에게 예고도 없이 찾아 왔기 때문이다. 그러한 내용은 소문으로 듣고 이미 알고 있었으나 나와는 관계가 없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것이 이듬 해인 1965년1월 중순 미국에서 귀국한지 7개월 되는 어느 날 해병대 사령부 인사국장으로부터 이례적으로 한참 교육 준비에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나에게 진해로 직접 전화가 걸려와서 현실로 나에게 다가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인사국장이 나에게 직접 전화할 만한 용건은 없는데? 하면서 나는 어떤 으아심과 함께 수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이근식 중령입니다." "응 이 중령?. 나 인사국장인데 이 중령 월남에 갈 생각이 없어?" 하고 아무 설명도 없이 나에게 묻는 것이 아닌가? 아닌 밤 중에 홍두깨라더니 이걸 두고 하는 소리 같았다. "월남이요?" 했더니 인사국장이 "지금 사령관님 모시고 국장회의 중인데 파월 장교문제로 중령급 중에서 마땅한 적임자가 없어 고심 중인데 이근식 중령이 가장 적임자라고 국장들이 이야기가 되서 사령관님도 동의하시는데 이 중령 어떻게 할꺼야?" 하고 묻는다. 생각도 안 해 본일이 돼서 나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가만히 있었더니 "이 중령 어떻게 할꺼야?" 하는 독촉 소리가 수화기에서 들렸다.
이때 나는 그렇다면 우선 가족하고도 의논할 시간이 필요해서 "언제까지 결정하면 됩니까?" 하고 되물었더니 "지금 결정해야 돼. 사령관님이 기다리고 계셔"하지 않는가. 그래서 나는 시간을 좀 달라 했더니 1분 이내에 결정하라는 것이다.
나는 좀 어안이 벙벙했으나 계속하여 "뭣 하러 월남에 가는 겁니까?" 하고 물었더니 인사국장은 "이번에 한국 정부에서 건설지원공병단(비둘기부대)을 혼성부대로 편성하여 파월하는데 해병대에서 정보참모 요원을 중령급으로 차출키로 된거야" 했다.
나는 인사국장의 설명을 듣고 미국 육군 특수전학교에 유학 갈 때도 "특수전하교(Spl.Warfare School)라하여 도미유학 합격자 중에는 아무도 희망자가 없으니 이 중령이 가야한다"라는 이상한 논리로 갑자기 "도미유학을 가라" 해서 이미 결정된 결혼일(5월30일)을 연기하면서까지 유학갔었는데 이번에 또야? 하는 짜증스러운 생각이 퍼뜩 들었다. "도대체 미국 유학에서 귀국한지 6개월 밖에 안 됐는데 하필 나야?" 하며 생각하고 있는데 "이 중령 가는거야? 어떻게 할꺼야" 하며 독촉하는 소리가 수화기에서 다시 들려왔다.
나는 망설임 보다 한편으론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가족에게는 미안한 생각이 들었지만 모든 것은 해병대의 명예를 위함인데 이번 첫 파월 장교로 나를 지명 해준데 대해 나는 무척 반갑기도 했다. 이는 내가 인정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누구든 자신이 인정받기를 원하고 있음은 사실이다. 그러면 의욕이 생기고 따라서 용기도 생기고 자부심을 갖게 되어 무슨 일이든 해 볼 수 있게 된다. "국장님 제가 가도록 하겠습니다" 했더니 인사국장이 그렇게 좋아 할 수가 없었다. " 이 중령 정말 잘 생각 한거야 사령관님도 기뻐하실꺼야. 그러면 기지사령관실로 전화를 돌려." 나는 기지 사령관실로 전화를 돌리고 전화기를 내려 놓았다. 마치 무엇엔가에 홀린 것같은 기분이다. 그리고 나는 어떻게 군 생활을 이렇게 남보다 어렵게 하고 있는가 하는 생각도 잠시 들기도 했다. 그 어려웠던 지난 일들이 주마등처럼 머리 속을 스쳐 갔기 때문이다.
당시의 월남의 국내정세는 매우 어려운 혼미 속에 있었기 때문에 월남에 가는 것을 전쟁터에 가는 것으로 일반적으로 인식되어 있어서 누구나 월남에 가는 것을 기피하는 실정이었다. 이때부터 9개월 후 전투부대 파월 시 나의 동기생이 전투부대인 청룡부대의 부연대장으로 임명되었는데 그의 부인이 사단장을 찾아가서 자기 남편을 파월부대로부터 제외시켜 달라해서 파문을 일으킨 일이 있었다.
문제는 그 사람 속에 용기가 있느냐? 그리고 주어진 임무에 대한 지부심을 갖고 있느냐? 하는 군인의 기본 자세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런 경우 사람인 이상 나약할 수밖에 없다. 사람은 그 자체가 나약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나약한 군인정신도 튼튼한 정신무장에 따르는 혹독한 신체적 훈련을 통해서만이 강인해질 수 있으며 그 결과로 무슨 임무가 주어지건 훌륭히 수행해 나갈 수 있게 된다. 이것이 우리 해병대의 진면목이다. 즉 해병정신인 것이다.
우리가 군복을 입고 있다는 것은 그 조직의 명령에 따른다는 약속이다. 그렇지 않으면 군인이 아니고 월급쟁이에 지나지 않는 존재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서 약졸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사국장과의 전화통화를 마치고 잠시 후에 기지사령관으로부터 호출, 연락이 왔다. "이 중령 생각 잘 했어. 나라도 그렇게 했을 꺼야." 하고 기지 사령관은 나에게 미소를 띠면서 말했다.
이 기지 사령관은 지난 날(1957년) 제2연대장 시절에 내가 미 1군단의 요청으로 1시간 영어로 전쟁 경험담(공격 시 보병중대)을 강의하도록 사단으로부터 지시를 받았기 때문에 강의 준비를 할 준비시간을 달라 했을 때 "그것은 너 개인의 일이니 네가 알아서 준비하고 지금 진행 중인 FTX 업무는 계속 해" 라고 냉정하게 나에게 말할 때와는 사뭇 다른 표현이었다. 사람은 환경의 지배를 받는다 하더니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이렇게 하여 나는 미국유학에서 귀국 후 7개월 만에 다시 이국 땅 월남으로 가게 되었다. 이 결정은 나의 독단에 의해서였다. 가족하고는 일언반구도 의논할 시간이 없었으니 가족에게는 정말 미안할 뿐이었다. 그 미안했던 감정은 아직껏 내 속에 남아있다.
2. 비둘기부대 정보참모
1965년1월30일부로 나는 파월 군사원조단 요원으로 함참본부로 발령이 났다. 우선 인사만 하고 진해로 다시 돌아가 가족들과 함께 서울로 이사할 예정으로 서울로 상경했었는데 신편 비둘기부대 참모장(육군대령)이 준비에 바쁘니 계속 매일 출근하고 가족의 이사문제는 가족들이 알아서 이사하게 하라는 맹꽁이 같은 소리를 하면서 나에게 시간 여유를 주지 않았다. 이때 나는 육군장교들의 생리도 잘 모르고 낯선 편성 속에 들어와 있는지라 아뭇 소리 못하고 시키는 대로 하고 있었다. 나의 직책은 정보참모이다.
며칠 간 부대편성 준비에 바쁜 날을 보냈으나 진해에서 영문도 모르고 있는 가족이 염려가 되어 참모장에게 2일 간이라도 여유를 달라했으나 역시 거절당했다. 그런데 그때 마침 비둘기부대장으로 임명된 장군(육군준장)이 신병을 이유로 교체되어 신임 부대장으로 조문환 준장이 부임해 왔다. 그는 내가 육군 공수교육대에서 13기(1962년)로 공수교육을 받고 있을 때의 공수단장이었고 또한 미 육군 특수전학교의 동문이기도 하다. 그러니 나와는 구면이다.
적지에서 우군을 만난 듯한 기분이다. 나는 서슴치 않고 참모장을 경유치 않고 바로 단장에게 "가족이 아직 진해에서 서울로 이사 못 했으니 진해에 잠깐 다녀 오겠습니다." 고 했더니 쾌히 승인을 해 주었다. 참모장에게 다시 이야기 했으나 여전히 안 된다는 소리다. 나는 단장의 허가를 이미 얻었다 했더니 아뭇 소리 안 했다. 아니 못 한 것이다. 속으로는 꽤 약올랐을 것으로 나는 생각했다.
나의 보좌관으로 육군방첩부대 출신인 황 소령이 임명되어 신원 조회 업무를 담당, 처리하고 있기 때문에 현재의 나로서는 할 일이 전혀 없었다. 그래도 참모장은 무슨 생각에서인지 나에게 가족을 진해에서 서울로 옮길 수 있는 시간을 주지 않았다. 이럴 때 비둘기부대장이 교체된 것이다. 전역원서를 제출했다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어떻게 전역을 생각하고 있던 장군을 한국군 창군이래 처음으로 외국으로 파병하는 독립부대의 지휘관으로 임명했는지 알수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그 당시의 분위기를 봐서 그는 겁을 먹고 전역했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야간 열차로 진해에 새벽에 도착하여 온종일 처와 둘이서 이삿짐을 꾸리고 저녁 무렵에 진해역에서 서울로 이삿짐을 부치고 딸을 포함한 우리 셋은 야간 열차로 진해를 출발했다. 나는 속으로 이거 너무 하는 것 아니냐 하고 가족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또 이런 나자신에게 화도 나고 원망도 했지만 부질없는 일이었다.
참모장과의 관계는 이렇게 시작부터 이가 서로 맞지 않는 Bearing 처럼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지내고 보니 사람은 그렇게 좋을 수가 없는데 주책이 없었다. 키 큰 사람치고 싱겁지 않는 사람이 없다더니 과연 그런 성품의 소유자인 것같이 나는 생각되었다.
이윽고 우리는 부대 창설을 위해 육군지역으로 이동했다. 경기도 가평군 '현리'에서 부대 편성을 시작했다. 우선 당면 문제로 제기 된 것이 경비대대장의 인선이었다. 비전투부대인 군사원조단(비둘기부대)의 방호책임을 맡게 되는 경비대대장에 대하여 지휘관이 우선 그 임무의 중요성에 비추어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미 발령되어 근무 중에 있는 경비대대장 대신에 육군 공수단출신인 이광로 중령으로 교체되었다. 같은 공수단 출신들이며 이광로 중령은 공수단 대대장출신인 동시에 나와는 미 육군 특수전학교의 동문이다.
부대 편성상의 요직에는 전부 육군 공수특전단출신 장, 사병으로 충원되었다. 그러니 나에게도 육군부대의 분위기가 서먹 서먹 하지 않게 됐다. 나도 육군 공수단출신 해병대 장교이고 또한 공수교육을 받고 있을 때 부학생장이던 김신배 소령(육사 12기 당시는 2기로 호칭했음)이 인사참모 보좌관으로 부임해 왔고 작전참모실 해군 보좌관으로 해사 9기생출신인 하 소령이 임명됐으며 해병대 보좌관으로는 해간 19기생출신인 조형구 대위가 임명됐다.
특히 해병 공병중대장인 박동규 소령(해간 12기)은 1955년도에 내가 사관 후보생 중대장(해간 19기)을 하고 있을 때 구대장이었던 등등으로 나는 타군과의 근무 환경 속에서 흔히 야기될 수 있는 불협화음 같은 염려는 안 해도 되게 됐다.
그러나 공수단출신이라 하여 공수단출신 아닌 육군장교들의 질시의 대상이 될 줄은 나는 꿈에도 생각못했다. 후일에 나도 이들, 비공수단출신 장교들로 인하여 "정보참모는 비둘기부대장의 고문 역활을 하고 있다"는 등의 육군장교들의 질시의 중상하는 엉뚱한 소리를 합참본부를 통하여 비둘기부대장으로부터 듣기도 했다.
이때 비둘기부대장도 이런 육군장교들의 부대장에 대한 우회적인 합참을 통한 중상으로 인하여 심적으로 부담을 느끼고 있다고 나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한 일이 있었다. 결과적으로 전투부대가 파월되어 한국군 사령부가 Saigon에 설치되면 나는 직책상 자동적으로 J-2(정보참모부)의 보좌관으로 보직될 것으로 나뿐만 아니라 한국군 사령부의 선발대 요원들(J-2)도 그렇게 기정 사실로 예상하고 있었는데 엉뚱하게도 J-1보좌관으로, 나의 현직(J-2)과는 전혀 무관한 부서로 보직되었다. 그로 인하여 지난 7개 월 동안 내가 힘들여 구축한 첩보망은 자동 해체되었고 따라서 첩보원들에게 지급한 정보활동비도 허공으로 날라가버렸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확실한 내용은 알 수 없으나 단지 내가 생각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비둘기부대의 J-2에 정보활동비가 국방부 장관이 비둘기부대를 방문했을 당시(1965년4월15일) 우리의 건의에 의해 정보활동비가 매월 국방부로부터 송금되어 온 것같이 한국군 사령부(J-2)에도 막대한 정보활동비가 지급되었었다는 사실이다. 때문에 타군 장교인 내가 그들의 정보활동비의 운용 내용에 대해서 알게 되기를 그들은 원치 안했을 것은 당연했을 것이며 거기에 비둘기부대의 일부 장교들의 그들의 상관인 비둘기부대장과 정보참모인 나에 대한 왜곡된, 중상적인 내용이 합참 본부에 보고된 것을 기화로 나의 당연직인 J-2 보좌관에 육군장교로 대치한 것은 당연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런 면을 생각하면 그들은 내가 평소에 생각하고 있던 그런 거창한 대육군이 아니라 소심하고 거창한 소육군으로 생각되었다. 특히 내가 업무 수행 중에 접촉한 장교들의 상당 수가 그랬고 또 그렇게 보였다.
이번의 한국군의 해외 파송은 우리에게 특히 큰 의미를 주고 있다. 그것은 우리도 이제 이웃 나라를 위하여 군사지원을 할 수 있게 됐음은 그 얼마나 국위선양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우리의 선한 민족성을 이웃 나라들에게 이 기회를 통하여 보여줄 수 있다는 기쁨을 마음껏 음미하면서 우리의 각오를 더욱 다지게 됐다.
또한 우리는 북한군의 불법 남침으로 발발한 한국전쟁 당시 UN군의 지원이 없었으면 어찌 오늘의 우리가 있을 수 있을까 하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우리도 이제 이웃 나라로부터 지은 빚을 갚을 수 있게 됐으니 기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나라에서 창군이래 처음으로 파송하는 이 해외 파병이 좋은 성과를 얻게 되길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희망하고 있을 것이고 또한 관심을 갖고 있을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더욱 노력하여 준비에 만전을 기하여 국민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겠다는 각오를 더욱 새로이 했다.
이때 우리가 시급히 해결하여야 할 사항이 두가지 있었는데 첫째는 장병들의 신원조회이다. 신원조회가 끝나야만 부대 편성요원으로 편입되기 때문이다. 만일 신원조회에서 탈락되면 그 인원수대로 새로이 보충을 받아 신원조회에 돌려야 되고 그 결과에 따라 통과된 인원을 다시 예하부대에 배치하여야 되기 때문에 시간이 한정되어 있는 우리로서는 꽤 힘들고 어려운 업무이고 둘째로는 즉각 조치 훈련도 병행 실시하여야 했다. 이것은 차량으로 병력을 이동 중 적으로부터 기습공격을 받았을 경우 이에 즉각 대처하는 훈련을 의미한다.
월남의 정황은 좀 무시무시하게 들려왔다. 마치 Saigon시도 전쟁의 와중에 있는 듯 신문지상에 보도되고 있었다. Saigon시내에서 이동 시는 Jeep차에 기관총을 장착하고 언제 있을지 알 수 없는 월남 공산주의자(Viet Cong)들의 습격에 항상 대비하고 있어야 한다는 등등의 정보보고도 우리를 더욱 긴장시키고 있어서 우리가 마치 전투하러 가는 전투부대인 것같은 착각을 일으킬 정도이다.
해병대 사령부에 정보보고를 위해 가서도 나는 현재 진행 중인 상황과 월남의 정황을 정보보고서에서 발췌한 내용을 그대로 설명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공연히 월남 현지 정황을 공포 분위기로 표현하는 것같은 그런 기분도 들었지만 보고서 내용이 그러니 나인들 이 내용을 어떻게 수정해 보고할 수는 없었다.
정보보고서를 통해서 우리에게 알려지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겁주는 이야기들 뿐이다. 우리를 더욱 긴장 시킬려는 속셈은 아닌지 하는 생각조차 들 때도 있었다.
어느 날 사령부에 중간 업무보고차 들렸는데 벌써 파리들이 냄새를 맡고 끼기 시작했다. 장사꾼들이다. 어떻게 내가 월남으로 가는 줄을 알았는지 나에게 여러가지 청탁이 들어왔다. 그 중에는 우리가 잘 아는 국내의 굴지의 제약회사에서 자기들의 제품을 월남의 특정회사에 소개해 주고 계약이 성립되면 그에 상응하는 사례를 어떻게 해 주겠다는 등의 구체적인 제안까지 해 왔다.
그런 청탁은 사령부 근무 장교들을 통해서 들어왔다. 물론 나도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무슨 소리야! 우리가 장사하러 가는 줄 아느냐" 하고 나는 그들에게 화도 냈다. 그러나 후일에 생각해 보니 그것은 나의 단순하고 또 짧은 생각이었다. 그렇게 화를 낼 내용은 아니었는데 나는 단지 사례를 준다는 소리에 화를 냈을 뿐이다.
국위선양은 우리뿐만 아니고 기업가들도 그들의 기업을 통해서 할수 있다는 생각을 나는 그때 미처 못했다. 그들의 요청을 내가 받아 들여서 월남의 상사들과 연결시켜 줬으면 그들의 월남 진출의 기회는 더 빨리 왔었을 것이다. 직책상 나에게는 충분히 그들을 그렇게 연결시켜 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내가 착각한 것이다. 이것은 나에게 무엇이건 자기 위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귀중한 교훈을 주었다.
2월 9일 서울 운동장에서 박정희 대통령 내외분의 임석하에 파월부대를 위한 거국적인 환송식이 성대히 거행되었다. 나는 조 단장과 함께 단상에 올라가 박 대통령으로부터 태극기를 받고 단상에서 내려왔다. 육영수 여사를 바로 앞에서 가까이 보기는 처음이었다. 환송식은 그야말로 감격의 순간의 연속이었다.
    비둘기부대장 조문환 준장 및 참모들(좌측부터 J-1, J-2(필자), J-3 및 J-4)
  환송식을 마치고 우리는 서울 시내의 종로거리를 시가행진을 했다. 국가를 대표하여 해외로 어려움 속에 있는 월남국을 우리가 한국전쟁 때 UN회원국으로부터 지원과 원조를 받은 것같이 우리도 이제 그들을 지원하고 또 그들에게 원조를 제공하기 위하여 간다는 자부심이 우리 가슴 속에서 용솟음치고 있음을 느끼면서 우리는 보무당당하게 시가행진을 했다.
종로의 양 연도에는 인산인해로 꽉 차 있었다. 손에 손에 태극기를 들고 우리를 향해 흔들고 있었다. 우리의 무운장구를 기원하고 있는 듯 보였다. 정말 감격의 순간의 연속이었다.
나는 선임참모인지라 부대장차, 참모장차 다음의 차의 앞자리에 서서 국민들의 뜨거운 환송에 손을 들어 흔들면서 화답했다. 그때의 심정은 정말 감격의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국가에 대한 충성심과 아울러 용기가 더욱 용솟음 치고 있음을 나는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국군의 날' 행사에서의 감격과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시가행진 중에 어디선가 "근식아!"하는 소리가 들렸다. 왼쪽에서 들려서 돌아보니 나의 동기생인 한국전쟁 때 나와 3소대장을 교대한 김동규 였다. 그 소리를 듣고 마치 내가 전쟁터에 가는 것같은 착각에 빠질 정도였다.
나도 "야! 동규야!" 하고 손을 흔들었다. 그도 흔들었다. 이는 "도솔산 전투"(1951년6월7일)이래의 우리의 각별하고도 변함없는 우정의 표시이며 또한 무운장구를 비는 손 흔들임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나의 시야에서 멀어졌고 군중 속으로 살아졌다.
"도솔산 전투" 당시 그는 60mm 박격포 소대장였는데 3소대장인 내가 공격 중 부상당하여 후송된 직후 3소대장으로 임명되어 전투를 계속하였고 1952년3월18일 해병 제1연대가 서부전선으로 이동 후에는 제2중대장으로 '장단지구 전투"에서 분전 중 부상당하여 후송되었다.
시가행진 대열은 중앙청까지 와서 경내에서 우리는 시가행진을 끝내고 가족들과의 상봉의 시간을 가졌다. 그 후 우리는 우리의 주둔지인 '현리'로 돌아갔다.
그런데 어느 날 우리, 파월 비둘기부대의 주둔지인 '현리.에서 부대훈련 중에 육군 공수단출신들과 해병 공병중대 대원들 간에 충돌이 일어났다. 다행히 조 단장의 신속한 사태수습으로 더 이상 확대되지 않고 잘 수습이 되었다.
옛부터 우리 해병대와 육군 공수부대와의 관게는 그 군의 고유의 특성으로 인하여 마치 물과 기름같은 사이였으니 마찰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서로 특성이 다른 양군이 잘 융합이 될 수 있으면 얼마나 큰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이 사건은 내가 서울로 업무 연락차 해병대 사령부로 출타 중에 일어난 사건이었는데 조 단장도 이 사건을 계기로 해병대가 어떠함을 처음으로 알게 된 것으로 나는 생각했었는데 그러한 사실을 나는 월남 현지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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