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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4월 30일. 남베트남이 세계지도상에서 국명이 지워진지 29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리고 1973년 3월 20일. 베트남의 대공전선에 파송되었던 우리 국군이 8년 4개월 만에 개선 귀국한 날이 31년이나 흘러갔다.
그 동안 남베트남과 한국은 엄청난 변화와 발전을 체험하였다. 다 같은 분단국가로서 자유진영의 일원이었던 남베트남은 공산화통일이 성취되었지만, 아직도 1인당 국민소득이 1200달러에 머물고 있는 빈곤한 사회주의 체제의 개도국이다. 그러나 한국은 6.25전쟁의 참화를 딛고 일어서서 비록 통일을 성취하지는 못하였으며 최근에 와서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당하고 있기는 해도, 한때 국민소득 1만 달러를 돌파한 개도국의 선두주자로서 아시아에서는 일본에 이어 두 번째로 올림픽을 치르고 OECD까지 가입함으로서 선진국의 문턱에 와있다. 그리하여 경제발전과 민주화의 두 가지 기적을 함께 이룩한 표본적인 사례로 국제사회에서 높이 평가받기까지 하였던 것이다.
만약 한국도 6.25전쟁 시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지 못했다면 대한민국이란 국호가 세계지도상에서 지워지고 말았을 것이며 오늘날의 베트남처럼 빈곤과 좌절의 공산독제체제하에서 7천만 민족이 신음하고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6.25전쟁이 비록 무승부로 끝났지만 냉전의 승리를 위한 원동력이 되었다는 탈냉전시대의 서방측에 의한 긍정적 평가도 달라졌을 것이다.
돌이켜 보건데 베트남전쟁은 미국이 치른 역대 전쟁 가운데 가장 긴 전쟁이었으며, 유일한 패전의 불명예를 기록한 전쟁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이 전쟁으로 말미암아 제기된 시비는 미국을 제2의 남북전쟁상황이라고 부를 정도로 국론이 분열되고 격한 공방의 논쟁에 휘말리게 하였으며, 아직도 그것이 끝나지 않은 채 심한 후유증을 앓고 있는 것이다.
그 가장 큰 원인은 베트남전쟁에서 미국이 1600억 달러의 예산과 연인원 100만 명을 비롯하여 연 척수 450척의 함정과 연 대수 1만 2천대의 항공기에 의한 600만 톤의 폭탄이 투하된 전쟁을 치른 결과 이기지도 못한 싸움에서 5만 8천여 명의 전사자와 36만 여명의 전상자는 물론 70만 여명의 정신이상자 및 8만여 명의 고엽제 후유증환자를 발생시켰던 치욕적인 패전일 뿐만 아니라, 엄청난 민간피해를 발생시킴으로서 비도덕적인 추악한 전쟁(dirty war)으로 국제사회에서 비난받게 되고, 당시의 자유와 평화란 개입의 대의명분마저 흐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전쟁을 치른 전 과정에 걸쳐 전쟁지도층과 군부의 잘잘못에 대한 시시비비가 여과 없이 노증되고 개방적으로 논의되다 보니 그 매듭이 쉽게 맺어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냉전시대에 봉쇄정책의 일환으로 정의의 전쟁이란 대전제하에 도미노이론을 내세워 아시아의 공산주의세력 팽창을 저지한다는 명분 하에 투르만 대통령이 남베트남에 대한 군사원조를 결정한 1950년 5월을 기준 한다면 1975년 3월 베트남의 패망 시 까지 25년간이 미국의 개입기간이 되고,1961년에 케네디 대통령이 900명의 미군고문관을 파견한 때부터 따진다면 14년이 되며, 1963년 4월에 미군전투부대가 투입되기 시작한 때를 본격적인 전쟁개입시기로 본다면 12년이 된다.
한마디로 베트남전쟁은 “정글에서 싸운 한국전쟁(Korean war in jungle)"이라 할 정도로 동질성과 이질성이 혼재하면서도 한국전쟁에서 비긴 쓰라린 경험을 더욱 증폭시킨 패한 전쟁으로서 ”더 이상 반복되어서는 안 될 전쟁( no more Vietnam war again)"으로 미국은 의미심장한 결론을 짓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미국이 주도했던 베트남전쟁의 격전기간중 비록 병력규모는 미국의 10%정도였지만 연인원이 미군의 30%에 육박하는 30여 만 명을 파송했던 한국군의 발자취를 재조명해봄으로서 그 동안 감추어져 왔던 그리고 논의 자체가 금기시 되었던 참전후유증과 제기된 쟁점을 당면 과제란 차원에서 건설적인 비판과 함께 개방적 논의가 불다피한 시점에 와 있다. 특히 최근에 김대중 대통령이 베트남에 대하여 전쟁기간 중에 한국군이 준 고통에 대하여 정식 사과를 표명함으로서 실제로 어떠한 고통을 주었는지 여부를 규명해야 할 것이다.
이는 한국군의 자기 성찰기회부여와 함께 개방적 조직발전을 지향한 건전한 정책 전략의 형성은 물론, 전쟁연구와 관련한 실증적 문제인식 및 현실적 처방 모색에 일조 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면 그 당위성과 필요성은 더욱 강조될것이다.
베트남전쟁은 그 성격이 애매모호하면서도 다양한 함축성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전쟁 주도국인 미국도 아직 시비논쟁을 계속하고 있을 정도로 예민하면서도 결론에 도달하기 어려운 쟁점을 안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한번도 베트남국민에게 미군이 고통을 주었다는 표현을 한적이 없다.
그러나 미국은 베트남전쟁이 결코 정의의 전쟁이나 성전이었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그들의 실책과 시행착오를 진솔하게 시인하면서도 국가이익에 반하는 언동은 자제한다. 그리고 전쟁과정을 통해본 교훈을 도출하여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당국과 군의 성숙한 역사의식이 돋보인다.
그들은 국가와 국가지도자 또는 정책당국자에게 책임을 묻고 날카로운 시비를 제기하지만 참전군인들을 비방하고 명예를 훼손하면서 범죄 집단처럼 매도하는 소아병적 작태는 절대로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베트남전쟁의 실상을 이렇게 적나라하게 묘사하면서 반성하기도 한다. “ 베트남전쟁에서 많은 사람이 폭격을 맞고 지뢰가 터져 죽거나 불구가 되었다. 미군은 때로는 민간인을 죽이고 포로를 고문하기도 했다. 우리는 그들의 가재도구를 불태우고는 학교와 병원 그리고 고아원을 새로 지어 주었다. 그리고 베트남군에게 총포와 식량 그리고 의약품을 제공하였다. 참전군인들은 베트남인을 적인지 알면서 또는 모르면서도 죽였다. 그리고는 그들을 돌봐주었다. 베트남전쟁 시 무엇이 올바른 임무인지 알 수가 없었다. 참으로 몸서리치는 전쟁이었다.
전쟁은 군인 만 치르는 것이 아니고 국가의 대역사인 바, 단지 군인은 국가의 명령을 수행한 싸움의 도구로 사용된 데 불과하기 때문에 전쟁의 결과를 국가적 차원에서 평가해야지 참전군인에게 책임을 전가하려는 것은 잘못이다. 그러나 이 같은 성숙한 군사문화가 민주시민사회로 승화되지 못한 한국에서는 전쟁의 본질 특히 베트남전쟁의 특수성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현대전의 속성상 불가피하게 불가항력적으로 또한 우발적으로 발생하기 마련인 국부적인 대민피해를 무조건 계획적으로 의도된 집단 양민학살이라고 매도하는 일부 함량미달의 반국가적 식자들이 악의에 찬 거짓주장을 내세워 군의 사기를 저하시키고 참전군인 의 명예를 훼손하는 국가안보 유해행위를 자행하고 있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더욱이 이를 베트남 국민에게 국군이 고통을 준 것으로 국가원수가 공식 시인하고 사죄 발언까지 한다면, 역대정권이 정립해 온 한국군의 파월 명분과 실리의 논리를 소급하여 부정하는 결과가 되고 만다. 군사동맹인 미국의 입장은 물론 우리의 주권국가로서 위상은 어떻게 되는가?
지난날 우리참전전우들이 베트남의 정글에서 파충류와 풍토병의 위험을 무릅쓰고 적과 교전하는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소수의 민간인으로 위장한 적게리라의 소탕작전에서 본의 아니게 민간인에 대한 피해를 발생케 한 것은 사실이지만, 고의적인 민간인 사살은 행하여 지지지 않았다. 그런데 베트남 참전군인들을 마치 인간사냥을 일삼는 야만적 집단학살자로 덮어씌우는 일부 함량미달의 식자 대부분은 전쟁을 경험조차 못한 철부지들이며, 국가안보나 국가이익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환상적 통일논리에 심취하여 주한미군철수와 국가보안법폐지를 실현하고자 그 연장선상에서 반미 반군감정을 촉진 증폭시키려는 저의로 베트남 참전자를 매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하에서 왜곡된 현실을 바로잡기 위해서 당국은 임기응변적으로 우유부단하게 현실안주에 집착하지 말고 과감하게 현안문제와 맏부딧쳐 장기적인 안목의 전략적 해법을 찾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가안보적 차원에서 합리적이고 합목적적인 처방을 모색 시행해야 한다. 당국이 계속하여 일부 불순세력이 파월참전자들을 용병이나 양민학살 대상으로 내세워 매도해도 이를 묵인 방치한다면, 민군 갈등 증폭은 물론 군의 위상과 존립가치 마져 심각한 손상을 입어 국군의 국가안보와 국토방위에 대한 사명의식 상실은 물론, 자유민주헌정체제를 수호하려는 국민의 전의를 말살하는 무서운 결과를 빚게 될지도 모른다.
6.25전쟁이 아직 완결되지 않고 있으며 북한의 대남전략 불변 현실을 인정한다면, 제2의 한국전쟁에 대한 개연성을 부인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한국군이 경험한 양대 전쟁인 6.25전쟁과 베트남전쟁을 통해본 전훈과 그 후유증을 미래전쟁을 위한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역사는 수수께끼 같은 교사이며, 야바위꾼이기도 한바, 그 유일한 교훈은 미래가 과거에 의존할 수 없고, 항상 진실로 규명된 바가 돌이킬 수 없는 허위로 둔갑할 수 있다" 는 한 역사학자의 말을 되색이면서 베트남전쟁에서 흘린 우리의 피를 과소평가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 이선호(군사평론가/ 행정학 박사) |
No, 118
베트남전쟁을 회고하면서... 
베트남전쟁 한국군 포로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