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의 연작을 시작하며>
오늘 여러분께 평화의 인사를 드리게 됨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내가 쓴 어줍잖은 글들이 여러분들에게 다가가고 있다니 두렵기도 합니다. 나는 그동안 반백년을 넘게 살아오면서 내눈으로 본 역사의 이야기를 글로 쓰고 있습니다. 어쩌면 내가 살아온 삶들이 굴곡된 역사의 한순간들이기에 나 혼자서 깊숙하게 간직하기보다 동시대를 살아왔거나 후세를 살아가는 여러분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소박한 심정으로 소설들을 써 내려갈 생각입니다.
저는 역사학자도 아닙니다. 다만 수필을 쓰고 소설공부를 하면서 8.15 해방공간에서 한국전쟁, 그리고 민주화 투쟁을 함께하고 군사문화의 병패를 보면서 반백년이 훨씬넘은 이 땅의 분단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작은 노력을 하고자 합니다. 다시는 이 땅에 전쟁이 없도록 한반도 평화를 위해 함께 하고자 합니다.
이런 좋은 난을 배려해주신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윤영전 올림
--------------
윤영전님의 첫번째 소설
남루한 후회
남루한 영혼에 윤기 있는 몸이란 얼마나 저주에 가까운가. 세상에서 가장 뜨거운 눈물은 억울함에서 오지 않고 오직 진솔한 참회에서 흐른다. 인호는 언제부터인가 메마른 영혼이 겹겹이 쌓인 허울을 씻고자 했지만 뇌리에 맴돌기만 할 뿐이었다. 그가 생각하는 뜨거운 눈물과 남루한 후회는 아득한 먼 옛날, 철부지 없었던 때의 일이었다. 너무나도 선명하기만 해 지워지지 않은 그때의 일들을 기억해 내기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인호는 주말이면 앞산에 오른다. 소가 잠자는 모습이라 해서 우면산이라 부르는 산이다. 산에 오를 때마다. 그는 소처럼 우둔하게 살지 않으리라 다짐하곤 했다. 유월의 산은 짙푸른 잎새들로 무성한 나무들이 저마다 싱싱한 생명력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는 살아 있는 모습을 눈앞에 대하면서 지난날 자연스럽지 않았던 죽음을 떠올린다. 생각하면 너무나도 억울한 죽음이었다. 갑자기 정막을 깨는 총소리가 들려 왔다. 마치 전쟁으로 격전을 벌인 것처럼 긴장하는 마음이었다. 전쟁도 아닌 도심에서 총소리는 분명, 평화로운 마음을 갈라놓았다. 정신을 차려 살펴보니 인근 부대 사격장에서 나는 소리였다. 언제부터인가 앞산 산골짜기에 사격장이 생겼다는 것이다. 주말마다 사격장에서 마치 꽁 튀기듯 한 총성을 들을 때마다 인호는 아주 오래 전 고향 마을 뒷산에서 총성이 울리면 사람이 죽어 간 사실을 직접 목격했기에 총소리는 필시 생명을 단절한 살상무기로 강하게 각인이 되었었다.
인호가 열 살의 어린 나이였을 때의 일이다. 그러니까 반 백년이나 된 세월이 훌쩍 지나갔지만 그때의 기억은 선명하다. 밀리고 밀린 우리 국군은 인호의 고향까지 점령당하였다. 그곳에서는 더 이상 어느 곳으로 피난을 갈 수가 없었다. 열 식구나 되는 대식구를 거느리고 피난을 떠난다는 일은 무모한 짓 이였다. 수 백년을 대대로 이어온 고향을 버릴 수가 없었다. 시내에서 피난 온 사람에게 건너 방을 내어 주었다. 이어서 들어 닥친 인민군들은 인호 집을 방문해 아버지를 찾았다.
“동무께서 오늘부터 면 당위원장입니다. 상부의 명령입니다. 그리고 청년 동무는 의용군 대장으로 임명되었습니다”
“나는 아무 것도 모르기에 맡을 수 없습니다. 저보다 유능한 사람을 찾아..”
“뭐 반동하겠다는 겁니까?. 잔말말고 잘 부탁드립니다.”
인호는 하루아침에 인민 위원장의 아들이 되었다. 할아버지와 백부께서 면장을 맡기고 했지만 별이 그려진 인공치하에 면장은 장래가 걱정뿐이었다. 인민군들은 주민들을 안심시키려고 낮은 목소리로 “동무들 내래 반갑습니다” 하며 친근감을 표시하곤 했다. 인호는 국군과 인민군의 임무 교대가 신기하기만 했다. 어느 때는 산에 올라 도심의 전투기 폭격을 목격하고 교전을 보면서 총탄이 생명을 앗아간다는 사실을 깊게 느끼게 되었다.
얼마 후 인호는 소년 의용군 동무가 되었다. 대나무로 만들어진 따발총으로 밤이면 앞산 등성에서 편을 갈 라 병정 놀이를 하였다. 이때 인민군들이 지나가면서 “소년 동무들 잘 하라우요. 열심히 싸우라우요”하면서 지나갔다. 원두막이나 재각에 모여 김일성 장군 노래 “장백산 줄기줄기 피 어린 자국”을 부르곤 했다. 그 어느 해보다 뜨거웠던 여름이었다. 밤이슬이 내릴 때까지 훈련과 노래는 계속되었다..
인호와 어린애들은 어른들의 뜻과는 아랑 곳 없이 퍽 재미있는 놀이였다. 어른들도 밤이면 학교 강당에 모여 연극과 민족의 노래인 봉선화를 합창하며 인공이 벌이는 홍보에 참여했다. 방공호를 파고 공습에 대비하면서 비상 사이렌 소리가 나면 일제히 방공호에 엎드려야 했다. 그래야 폭격을 피해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이러기를 3개월이 거의 다 되어 갈 무렵이다. 국군이 온다는 것이다. 국군이 인천 상륙에 이어 9.29일에는 중앙청에 태극기를 다시 게양했다는 소식이 있고 난 후 어느 사이에 인민군은 사라지고 있었다.
학교의 교실에는 쌀과 설탕, 무명, 솜털과 광목이 가득 차 있었다. 인공 시절에 어디선가 옮겨온 것이다. 이제 인민군이 물러가자 너도나도 마구 훔쳐 간 것이다. 그들은 마치 자기물건처럼 여긴 것이다. 인호도 학교에 갔다가 이 광경을 보고 책보에 설탕을 담아 왔었다. 얼마나 먹고 싶었던 설탕이었는가. 그 설탕을 마음 같아선 한 가마도 가져오고 싶었다.. 어떤 어른은 달구지를 끌고 와 담뿍 싣고 있었다. 굶주린 백성이 이게 웬 공짜인가 하며 가져갔다. 난리란 바로 이런 것이구나 인호는 생각했다. 그런데 그렇게 마구 가져가던 물건들을 3일 안에 반납하지 않으면 엄중 처벌한다는 방이 붙었다. 모두들 할 수 없다는 듯 지게와 달구지로 반납하러 간 꼴을 보며, 세상에는 공짜가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얼마 후 인공에 협조한 자들은 자수를 하라는 통지였다. 어른들은 모두 자수했다. 인호의 위원장 아버지와 의용군형도 자수했으나 인호는 어린이기에 자수를 면했다. 동네 머슴 3명도 자수를 했다. 이들은 일자무식이었기에 인민군들이 하라는 데로 따라 했을 뿐이다. 안 하면 반동이라는 말에 열심히 했다. 어떤 머슴은 주인에게 너무도 심하게 당했기에 이번에 약간 거드름을 피기도 했다. 그 주인은 경찰에게 자기 머슴이 심한 행동을 했다고 고발을 한 것이다. 이때부터 불려 가서 고문을 당하고 서로 못할 일들이 벌어졌다.
국군이 수복 후 정비하는 기간이었다. 국군은 북으로 계속 진격하고 있었다. 어찌하면 해방 후 이승만이 부르짖던 북진 통일이 이뤄질 수도 있다는 자신감을 주는 전황인지도 몰랐다. 그때는 되지도 않은 북진 통일을 주장하여 북으로부터 북침야욕이 있다는 빌미를 주었지만 실현성도 현실성도 없는 주장이었다. 가만히 앉아서 남침을 당하면서 한강을 사수하겠노라 큰소리를 쳐 놓고 자신은 이미 남하했던 일이 몇 달 전 일이었다. 사실 이 대통령의 언명으로 수많은 서울 시민이 미쳐 피난을 못 갔다. 어디 그뿐인가? 미처 피난하지 못한 시민을 남겨 놓고 작전상이란 명목으로 한강 다리를 폭파해 버렸다. 이 일로 서울 시민들이 인민군 수중에 들어가 별수 없이 연좌제에 해당되게 되었다. 당시에는 살고 죽는 문제였지만 나중에는 번번이 신원 조회에 옥죄어 당하는 꼴이 되었다.
전세는 가을이 가기 전 평양까지 진격하였다. 이승만은 평양 시민 환영 대회에 참석하여 마치 평소 지론을 달성이나 한 듯 의기 양양하게 말하고 있었다. 이제 곧 남북은 통일된다고 말하고 있었다. 벌써 몇 번의 실언을 하였는데 또 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그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인호 형은 부역자로 오라 가라 했기에 군에 지원을 하였다. 제주에서 기초 훈련을 받고 중부 전선에 투입되었다. 백마고지를 비롯한 전선에서 밀고 밀리는 작전이 계속되었다. 아무리 유엔의 지원을 받았지만 북한 지역을 완전 점령한다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 때 맥아더 장군의 압록강 넘어 중공 지역까지 격퇴하겠다는 결전의 의지를 보였으나 미국은 해임을 하였다. 오히려 중공군의 인해전술로 1.4후퇴라는 치욕을 맛보아야 했다. 형은 격전 중 손에 부상을 입고 후방으로 후송되어 치료를 받았다.
전세는 서울을 내어 주고 남으로 피난 행렬이 이어졌다. 두 번씩이나 피난을 해야 하는 꼴이었다. 정세가 변동되니 부역자들을 특별 관리하느라 잡아들이고 있었다. 밤에 잡히면 총소리가 나고 싸늘한 시체로 발견하였다. 파리 목숨만도 못한 부역자들의 목숨이었다. 큰집 머슴인 박종한 도 면 분주소에 근무했기에 자수를 했다. 그런데 어느 날 한밤중이었다. 마을 모퉁이에서 개 짖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더니 종한이와 오감이를 잡아갔다. 한참 후 뒤 산에서 들리는 총성이 온 마을을 뒤흔들었다. 다음날 인호는 어른들을 따라 용감하게 그곳에 가 보았다. 두 사람은 눈을 감지 못하고 싸늘하게 주검으로 있었다.
일년 전 큰형의 죽음과 머슴의 죽음은 어린 인호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총이란 사람을 잡는 몹쓸 무기라고 각인되었다. 그래서 총소리가 나면 가슴이 뛰고 신경이 곤두세워졌다. 그런데 한달 후 당숙이 죽어 갔고 외가의 외삼촌이, 그리고 이모부가 좌우익에 의해서 죽어 갔다. 또한 당숙 둘이 행방불명이 되었다. 이처럼 동족상잔의 피비린내 나는 전쟁의 뒤끝에서 삶의 허탈감으로 텅 빈 무덤이 집안에 있다고 느꼈다. 무덤이 집안에 있다는 것은 슬픔이 끝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3년 간의 전쟁이 끝날 때까지 부역자들의 집안은 안절부절하며 생사의 기로에서 어찌할 줄 몰라 했다.
남북이 엄청난 인적 물적 손실을 안고 휴전이 되었다. 그런데 과연 휴전 당사자는 누가 되겠는가? 남북이 정면으로 적대국이 되어 참전했으면서 이승만은 휴전협정에 참여하지 않고 고집을 하였다. 결국 한국이 빠진 가운데 미국과 북한이 당사자로 그리고 중공이 함께 조인을 하였다. 당시에 이 대통령의 아집으로 판문점 정전 위원회가 개최 될 때마다 한국은 옵서버로밖에 참석할 뿐이었다. 전쟁 당사국이 주도권을 행사 못하는 서글픈 현실이 되고 말았다.
인호가 전쟁의 아픔을 견디면서 성인이 되었다. 성인이 되어 갈 때 한 여인이 그 앞에 나타났다. 인호가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노래를 부르곤 했다. 그 날도 가극 토스카 중에서 ‘별이 빛나건만’과 우리 가곡들이었다. 앞산에 올라 마음껏 부르곤 했다. 그러기를 3개월 되었을 때 어느 날 이었다. 인호 앞에 나타난 여인은 말했다.
“아름다운 노래 잘 들었습니다. 정말 목소리가 아름답군요”
“제 노래 소리를 들었단 말이요. 어디에 사시는 누구요?”
“저 앞 동네 살고요. 이름은 지영이라고 합니다. 노래를 좋아합니다”
“나는 저쪽 동네에 살고 있습니다. 이름은 인호 고요. 외로울 때는 노래를 부르지요”
“어쩌면 그렇게 아름다운 목소리를 낼 수 있나요. 앞으로 자주 듣고 싶어요”
“뭘 요, 저는 아픈 가슴을 노래로 메우고 있어요”
그들은 이렇게 만남이 이루어 졌다. 외로워 보이는 인호는 노래를 불러 달래고 노래를 부르면 마음이 편안했다. 그토록 그에게는 총소리에 목숨을 잃어버린 주변 사람들이 생각 날 때에는 자신도 모르게 노래를 불렀다. 인호가 대학에 진학했을 때 군사 정변을 맞았다. 민주 역량을 발휘하며 많은 목숨을 잃고서 얻은 혁명도 어느 날 군사 쿠데타로 일순 되고 말았다. 인호가 재학 중인데도 군 입영 통지서가 발부되었다. 어찌 연기원을 낼 수도 없었다. 남자가 군 입대를 한다는 것은 성숙해질 수 있는 한 과정이라고 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자유에서 격리되고 집단 조직화된다는 사실은 거부하는 마음이었다. 우선 짜여진 틀에서 절도 있고 자유롭지 못한 행동이라는 사실이다. 부모 형제와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과 자주 만날 수 없다는 강박관념도 거부감의 일종이다. 그렇지만 군이라는 집단이 사람들이 사는 곳이지 어디 짐승들이 사는 곳이 아니지 않는가. 다만 엄격한 규율에 명령에 죽고 명령에 사는 자기 의사와 정 반대되는 행동도 할 수밖에 없다는 곳이다. 그래서 특수사회일 뿐이다. 잘만 견디어 내면 사회에 나가 좋은 경험으로 활용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었다.
인호는 몇 일 있으면 입영한다. 떠나기 전 맨 먼저 선산에 올라 조상들에게 인사를 올렸다. 할머니께도 부모님께도 큰절을 올리고 남매들과도 일일이 찾아 작별 인사를 하였다. 그리고 근간에 만 난 음악의 친구 지영이도 만났다. 그녀는 눈물을 글썽 이었다. 아마 그사이 정이 들었는지도 모른다.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를 목소리를 통하여 들을 수 있다는 사실에 마냥 가슴이 뛰었다고 말 한때도 있었다. 그렇지만 인호는 쉽게 정을 주질 못했다. 그래서 지영이를 단순한 우정으로 대하였다. 그래도 이별을 해야 했다.
“군에 가면 외롭다는데 어떻게 하죠. 마음대로 노래를 부를 수도 없을 거구요.”
“물론 외롭겠지요. 노래도 부를 수 없을 것이고. 그러나 세월을 아무리 붓 잡아도 갑니다”
“위문 편지 하고 싶어요. 그래서 외로움을 달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고마운 말입니다. 군이란 특수하기에 모든 잡념을 잊을 수도 있다고 봅니다”
“자주 편지하지요. 인호씨가 외롭지 않도록 부디 몸조심하세요. 총을 그렇게 격멸 하더니 결국 총과 함께 해야 하니 괴롭겠어요.”
“총을 무모하게 선량한 사람에게 함부로 쏘면 안되지요. 전쟁에서 정당방위라 한다지만 사실은 나도 괴로울 것 같아요”
두 사람은 이별의 슬픔을 잊으려 했다. 전쟁도 아니고 휴전이기에 안심을 하면서도 군이란 무기를 다루고 사용하기에 안전 사고에도 신경을 써야 할 판이었다. 이렇듯 인호는 자신을 감싸고 있는 주변을 돌아보고 무사히 돌아 올 것을 기약하면서 훈련소 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이제 군인이 된다. 그가 그렇게 경원 시 했던 총을 3년 동안이나 애지중지 관리해야 한다는 압박감 또한 있었다. 그러나 인호는 자신도 총을 가져 보는 것이 총에 대한 이해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처음 사격 연습을 하면서 몸에 느껴지는 묘한 전율이 있었다. 자신이 쏜 총탄과 같은 무기가 사람을 죽게 했던 요물이라 생각하니 번뜩 그 옛날 총소리인 듯한 착각을 하기도 했다.
인호가 군 생활을 1년여 동안 할 때에 부대 본부에서 장교 모집을 한다는 전통이 왔다. 그 부대에서 10명 정도 응시했으면 하는 요청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썩 내키지 않았다. 총에 대한 거부 반응과 오랜 기간 근무한다는 것과 더 큰 문제가 되는 것은 장교는 신원 조회가 까다롭다는데 있었다. 설령 합격을 한다 해도 신원 조회에 걸릴 거라는 판단이었다. 부대장은 몇 번이고 권유를 했다. 지휘관의 재질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초등학교 때에도 전체 회장을 했고 중 고등학교 때도 대대장과 규율 부장을 맡기도 했었다. 부대장에게 호된 질책을 받았으나 끝까지 버티었다.
인호는 처음부터 부대 행정병으로 근무했다. 정기적인 작전 훈련과 사격 훈련만은 참가했다. 만약 총만을 다루는 화기병이나 보병 또는 포병이었다면 인호는 군복무가 퍽 이나 괴롭게 지 낼 지도 몰랐다. 이래저래 군 생활을 중반을 넘기고 제대 말년을 맞이했다. 처음 입대해서 여러 생각에 날자가 잘 안 갔지만 어언 말년이 되었다. 이제 조수를 하나 골라야 할 판이었다. 자신보다도 더 잘 해 낼 수 있는 행정병을, 입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제대라니 정말 세월은 붙들어도 가지 말라고 해도 잘도 갔다. 고참 대우도 받고 행정병이기에 시간도 있었다. 책을 볼 수 있고 글을 쓸 수 있다. 말년은 흔히들 고문관 취급당한다고들 하는데 그는 결코 그렇게 당하지도 않았다. 해가 지나 6개 월 만 있으면 제대한다. 연말 연시가 다가오니 마음은 고향이다.
쓸쓸한 군대의 연말 연시다, 사회라면 연말 연시에 세배를 다니고 친구들과 사랑하는 사람과 질퍽하게 술도 한잔씩 했을 것이다. 내무반에는 언제나 잠이 부족한 전우들이 있다. 틈만 나면 눈을 감는다. 눈을 감는다는 것은 잠이 오기도 하지만 무언가 보기가 싫을 때 모든 걸 잊겠다고 할 때, 눈을 감기도 한다. 인호도 그들과 함께 누워 눈을 감았지만 잠은 오지 않고 오직 고향의 할머니와 부모님의 형상이 나타나 말씀하시는 것이다. 부모님들은 어떤 일이든 끝이 좋아야 한다고 조심 조심을 당부하시었다. 할머니에게는 군대에 가서도 그 적은 봉급이지만 모았다가 할머니께 담배 값으로 보내곤 했다. 그래서 인지 할머니는 효 손자가 당신의 곁으로 몇 달이면 돌아온다는 사실에 하루 하루를 손꼽아 기다린다는 것이다. 할머니는 집안의 열녀요 열부였다.
당신께서 애도 없이 18살 결혼 초에 청상과부가 되시었다. 오직 꿈이 있다면 손자들뿐이었다. 그렇게 애지중지하며 키운 큰손자가 청년 때 죽임을 당하고 둘째는 전쟁에 참전하여 부상당한 후 명예제대를 했으며 셋째인 인호가 군대에 있는 것이다. 두 형들이 효도가 중단되자 인호가 이어서 잘하고 있었다. 사랑도 자식도 손자도 잃어버린 텅 빈 가슴을 안고 살아오신 할머니였다. 인호는 중 고등 학생 때에 고학을 하면서도 할머니에 대한 효 마음을 계속하였다. 한 가문의 번성은 자손을 많이 두는 것도 있지만 자녀 중에 효 자녀 유무가 기준 되기도 한다.
인호는 신년을 맞이하여 본부 사무실에서 당직 근무를 하고 있었다. 요란한 전화벨 소리에 다가갔다. 군사령부에서 보내는 전언 통신문이었다. 내용은 뜻밖이었다. [해외 파견 지원자 긴급모집]이었다. 해외 파견이라 과연 어느 나라일까?. 전통은 곧바로 인사계와 부대장에게 결재를 득 하였다. 인호는 부대장에게 물었다.
그런데 모른다고 했다. 일단 부대 원들에게 공람을 시키라고 했다. 열람을 하면서 서로 가보겠다는 의사 표시를 하면서도 과연 어느 나라냐고 물었으나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잠시 후에 파견될 나라는 자유 월남이라는 것이다. 사실 부대 내에서는 신문을 접할 수 없었기에 월남이라는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도 알 수가 없었다. 다만 옛 안남 국이라 했으며 안남미 쌀이 우리에게도 낮 익은 기억이 있다. 우리와 비슷한 시기인 1945년 다음해 제네바 협정에 의하여 17도선으로 남북이 갈라진 나라라는 것이다.
인호는 자세히도 알지 못하고 오직 베트공의 공격이 심해 수도인 사이공까지 베트공의 공격이 있다는 사실만을 들은바 있었다. “가면 다 죽는다”는 그곳에 왜 연민을 느끼는 것인가?. 평소 모험심을 좋아했고 젊어서 고생은 사서라도 한다는 옛말을 기억하면서 특히 [평화의 사도 비둘기부대]라는 명칭이 마음이 끌렸다. 단지 그렇게 경원했고 미워한 총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사실이 걸렸다. 용감하게 지원을 했는데 부대장은 일방적으로 취소하여 버렸다. 인호는 다시 지원을 했다. 이번에는 군종 지도 김 소령이 또 취소했다..
“윤 병장 너는 부대 서무계다. 네가 가버리면 부대는 누가 일을 보나. 그보다 사실은 만약 죽는다면 너희 부모들에게 어떻게 낮을 들고 해명할 수 있단 말이냐”
“내가 하느님께 기도 해보니 위험한 곳이니 우리 신자들은 가지 안았으면 좋다고 생각하여 윤 병장을 비롯해 몇 사람을 취소 시켰다. 그리 알라”
부대장과 군종 지도 장교의 간곡한 만류였으나 인호는 다시 지원을 하고 있었다.
인호는 한번 결심을 꺽지 않았다. 자신은 사나이 기질이라는 것이다. 별수 없이 지원대열에 합류하여 부대 서무계로 업무를 개시했다. 부대 편성은 어디까지나 지원병으로 했다. 많은 지원자 가운데 신체검사에 불합격하거나 3대 독자이니 대를 이어가기 위해 갈 수 없다는 하소연도 있었다. 마지막으로는 신원조회가 문제였다. 그곳의 적이 베트공과 월맹군인데 공산주의가 아닌가. 싸우다 넘어간다면 결국 이북으로 넘어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철저한 신원조회가 있을 거라는 얘기들이었다. 사실 인호는 신원조회라면 자신이 없었다. 결국 탈락 일 것이라 생각되니 괜히 설친다. 그러나 신원조회는 합격이었다. 얼마 후 사령부의 인사참모 장교인 김 소령이 찾아왔다.
“윤 병장은 서울대 이 교수를 아는가. 나는 교수님의 제자로 부탁을 받고 찾아왔다. 용건은 월남지원을 철회하라는 말씀이다.”
“네! 잘 아신 분이죠. 그런데 저는 세 번의 철회를 종용받았지만 다시 지원하였습니다. 꼭 가기로 결심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윤 병장은 그곳의 상황이 얼마나 긴박한지 아는가. 구정공세에 사이공 미군가족들이 철수 할 정도로 심각하다. 목숨도 중요하고 이 교수님 부탁도 있고 하니 철회하라. 내 생각도 이 교수님 생각과 같다”
“말씀은 잘 알겠습니다. 죽고 사는 문제는 하느님께 맡기고 갈 것입니다”
“결심이 지독하군. 그렇다면 할 수 없지 부디 몸 건강히 귀국하기 바란다”
김 소령이 떠난 후. 인호는 생각했다. 모두들 반대하는 월남을 끝까지 가겠다는 자신의 결심에 대하여 스스로 자문해 본다. 만약 살아오지 못한다면 그분들에게 큰 누를 끼치는 일이요 부모님에게는 불효가 될 터이다.
파병훈련에 돌입한지 한 달이 되었다. 영하20도를 오르내리는 양평의 광탄 날씨였다. 그런데 얼마 후에는 30도를 넘는 뜨거운 여름의 날씨에 일년 내내 파견근무를 해야할 것이다. 정반대의 기온 속에서 풍토병과 말라리아를 예방해야할 일들이었다. 정글전의 특색과 베트공과 월남 민병 대와의 불분명한 식별 등 사전 교육에 임하면서 만만치 않은 전투 지역이라 여겨졌다. 비둘기는 비 전투 요원이다. 오직 학교와 고아원을 짓고 도로와 교량을 건설하는 것이 비둘기의 임무라고 강조하고 있었다.
현리에서 비둘기부대 창단 식이 있었다. 2천명 규모의 비둘기는 이제 월남 현지로 출발을 앞두고 서울운동장에서 범국민적인 환송을 받고 있었다. 대통령이 참석하고 가족과 친지 그리고 수많은 시민들이 환송해 주었다. 시가 행진도 있었다. 마지막에 가족들과의 면회시간에는 울음바다가 되었다. 인호의 부모님들은 아예 몸져 누시고 서울의 고모와 작은누이 그리고 이 교수님 따님이 나왔었다. 그런데 인호는 서무병으로 바쁜 업무에 대신 김 상병이 옷을 입고 나갔는데 미끼지 않았다는 것이다.
인호는 시간을 내어 집으로 고모 댁으로 편지를 썼다. 그리고 월남 간다는 말도 없이 신원조회로 들통이 난 것이다. 너무 걱정 마시고 무사히 꼭 살아 돌아오겠다는 언약이었다. 이렇게 편지라도 드려 야 하는 게 도리였다. 월남 출발준비를 완료하고 일차 부산으로 갔다. 그곳에서 3일 있다 제3부두에 정박중인 해군 Lst 함정에 승선했다. 망망대해를 2주간 밤낮으로 항해한 후 월남에 도착했다. 메콩강과 사이공강가의 풍광은 그야말로 아름다웠다. 이렇게 아름다운 나라에 무슨 전쟁이 있다는 것인가. 들판을 보니 농부들이 한가롭게 모내기를 하고 소가 논을 갈고 써래 질을 한 광경은 우리와 다를 바가 없어 보였다. 우리가 한 때 농업국이었듯이 월남도 삼모작이나 하는 농업국이었다. 식량으로 대신되는 바나나와 야자수 등 이름 모를 과일들이 풍성하기만 했다.
사이공 항구에서 환영 식을 끝낸 후 주둔지인 디안으로 향했다. 디안은 베트공이 프랑스와 수 십 년 전쟁을 하고 이어서 미국과 8년 전쟁을 한 격전지였다. 비둘기부대는 반경 2킬로를 중심으로 진지를 구축했다. 미국 다음으로 군인이 많이 파견되었기에 베트공은 언제고 공격이 있을 것이라는 정보였다. 아니나 주둔 2달 후인 4월2일이었다. 밤10시까지 경계병을 제외한 전 장병이 식당 앞 연병장에 모여 [또순이]란 우리 영화를 보며 향수를 달래고 취침을 했다. 그 후 밤11시였다.
박격포 탄이 연속으로 수십 발이 떨어지고 이어서 동쪽의 진지를 향해 공격을 해왔다. 인호는 비상벨을 울리고 각자의 진지로 신속히 이동하였다. 한 시간을 포탄소리와 총소리가 뒤범벅이 되어 격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인호는 이제 죽을 수도 있고 또한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직감으로 느꼈다. 총을 격멸하고 총소리는 사람의 생명을 앗아간다고 단단히 각오했던 심정이 요동치고 있었다. 실전에 임하며 앞에 나타나면 총을 쏘아야 할 운명의 순간이었다. 제발 나타나지 말아다오. 나는 그대들의 목숨을 죽이고 싶지 않다고 속으로 외치고 기도했다. 시간이 지난 후 격전장은 고요했다. 이따금 조명탄이 터지면 대낮처럼 밝은 진지 주위는 모두가 숨소리를 죽이고 사주경계를 펴고 있었다.
비둘기의 반격에 그들은 허겁지겁 도망을 쳤다. 반격을 가하고 그들이 도망가는 곳을 향하여 박격포를 쏘아 뎄다. 아침이 되어 현장을 가보니 베트공 한 명의 시체가 보였다. 처음 보는 죽음이었다. 인호는 베트공의 영혼에 안식을 기원했다. 부대 원들은 신이 낫다. 베트공들은 동료가 죽더라도 절대로 그대로 버리고 간 일이 없다는 것이다. 어떻게든 흔적을 남기지 않은데 아마도 단단히 혼나고 다급함을 입증한다는 말이었다. 아군도 몇 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국방 전사기록은 [한국군 해외최초파견 최초전투수행] 이었다고 적혀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만약 그들이 박격포를 1시간 앞당겨 영화관람중인 곳에 떨어졌다면 수백 명이 함께 죽었을 것이고 또한 단 본부가 명중했다면 단장과 인호도 죽었을 터였다. 그리고 부대 공격 때 외곽에서 미리 발견을 못했다면 이 또한 여러 사상자를 냈을 것이었다. 그들은 미숙했고 아군은 방어를 완벽하게 해냈다. 그 뒤 그들은 좀처럼 덤비지 않았다.
실전에 임해본 비둘기 전우들은 전선 없는 전쟁의 쓴맛을 보고 평화를 더욱 갈망했다. 부대의 구호가 “살아서 돌아가자. 경계 철저”였다. 이 구호는 단장인 조장군의 제창에 모두가 공감을 하고 있었다. 사실 월남 군은 베트공의 공격과 매복 전술 및 기습공격에 수수방관한 것 같았다. 따지고 보면 화가 날 일이지만 그들의 실제를 알고 나면 이해 할 수가 있었다. 프랑스와 진저리나는 전쟁에 미국과의 끈질긴 항전으로 지쳐 있었다. 제발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왔으면 했다. 솔직한 그들의 속마음은 외세는 떠나야 하고 이념 같은 것이 별 중요하지 않았다. 오직 민족감정이 통일되어 사는 게 최대의 갈망이었다. 이러한 나라에 자유 민주주의를 심겠다고 홀연히 참전했던 자신들이 부끄러워 졌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비둘기 경비대 전초병이 보초를 나갔다. 앞을 지나는 여인을 보고 성욕이 발동한 것이다. 강제로 추행하려다 여인이 반항하자 발에 총격을 가했다. 그 여인은 총을 맞으면서 도망을 갔다. 그리고 월남 정부에 고발을 했다. 몇 일 후 비둘기 부대는 경고서한을 받았다. “다이한이 베트공 100명 사살보다 월남 양민 한사람의 생명과 인권이 중요하다” 라는 창피스러운 경고를 받았다. 얼마나 뼈있는 말인가. 그들은 결코 같은 민족의 죽음을 원치 않는다는 것이었다. 어찌 보면 민족적 자존심이 크다고 할까?.
그 해 9월 드디어 전투부대인 맹호와 청룡이 도착하였다. 퀴논과 나트랑에 주둔하였다. 그리고 곧바로 베트공 소탕작전에 들어갔다. 군종 신부는 비둘기 신자들을 탄산누트 공항으로 불렀다. 그곳에는 수십 구의 유골상자가 정돈되어 있었다. 깜짝 놀랐다. 비둘기는 6개월이 되었어도 단 몇 명의 전우가 유명을 달리했는데 그들이 온지 얼마나 되었다고 이렇게 많은 전우가 죽어갔단 말인가. 눈물이 글썽거렸다. 정신을 차리고 그들의 영혼이 안식을 얻도록 기도했다. 이러기를 한 달이면 여러 차례 있었다. 어느 때는 청룡 1개소대가 전멸했다는 유해 앞에 억장이 무너지듯 괴롭기만 했다. 물론 전쟁경험도 없이 정글전도 처음으로 지형지물도 몰랐다. 베트공 마을의 한계도 잘 모르고 무리한 작전과 지휘관의 공명심 때문에 억울하게 희생된 전우들도 많았으리라..
그런데 전우들의 희생자 속출과 같이 월남민간인들의 죽음도 속출했다. 월남정부로부터 항의 서한을 받고 있었다. 너무나 많은 양민이 살해되었다는 현장 사진과 증언 및 고발장을 접하고 보낸 서한이었다. 사령관은 베트공 작전에 신중을 기하라고 명령하고 있지만 막상 작전에 임하면 동료가 피 흘리면 쓰러지면 닥치는 대로 사살이라는 것이다. 심지어는 확인사살과 베트공 첩자라고 목과 귀를 잘라 메 달고 다녔다는 소문이 있고 나서 다이한에 대한 경계심이 고조되었다. 그들이 오기 전까지 비둘기는 평화의 사도처럼 건설에만 열심히 하였기에 다이한 넘버원이라고 격려까지 해 주었지만 이젠 한국군 모두 다같이 증오의 대상이 되어갔다. 미국이 그리고 한국군이 당장 철수한다면 월남전은 그 날로 끝장이 날 판이었다.
인호는 1년여 동안 근무하면서 몇 번의 위험한 고비가 있었으나 그때마다 잘 넘기었다. 외출할 때에도 경계태세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살아서 돌아가리라” 는 굳은 약속도 있기에 허망하게 죽어 갈 수는 없었다. 그러나 아무리 살아가겠다고 발버둥쳐도 폭탄이 내 몸에 떨어졌다면 총알이 심장을 관통했었다면 별수 없었으리라. 이제 전쟁을 버리고 귀국한다.
월남을 갈 때는 느린 해군함정에 밤낮 2주간을 갔지만 귀국할 때는 비엔호아 비행장에서 7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비행기를 타고 마치 어린애처럼 들뜬 마음으로 김포공항에 무사히 도착했다. 출발 때보다는 왜소한 환영 식이었다. 최초의 해외파견 그 중에서도 선발대로 갔던 비둘기부대 2천명의 여단 규모였지만 주 임무인 평화 건설을 하였다. 때로는 베트공의 공격과 방어작업 중 불시의 기습공격으로 약간의 전우가 죽고 중부상자를 냈지만 당초 10프로의 손실보다 훨씬 적은 0.2프로의 최소한 손실이었다. 이는 비 전투요원이란 점도 있으나 지휘관인 조장군의 부하사랑과 부대 원들의 철저한 임무수행의 결과였다.
귀국하자 현충일 날 이었다. 인호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국립묘지를 찾아 이건이 하사 묘에 이르렀다. 그런데 어쩐 일인가. 그와 똑같은 사람이 서있는 것이다. 그는 쌍둥이 동생이었다. 흐느끼는 어머니 앞에 용서를 빌었다, 이하사의 전사 통지서를 작성하여 보낸 인호였기에 살아 돌아온 자신이 죄인이란 심정이었다. 동생에게 “형 몫까지 효도해 달라”는 부탁의 말을 남기고 주변 파월 전우들의 묘를 둘러보았다. 무려 3천 여명이나 되었다. 그 중에는 인호가 영결미사를 보아준 전우도 있었다. 1년여 동안 이렇게 많은 전우들이 죽었다니 믿어지지 않았다. 초창기였기에 무경험과 무리한 작전으로 희생된 아까운 전우들도 있었다.
인호는 귀국하자 한 달의 휴가를 얻었다. 서울의 이 교수 댁을 찾았다.
“윤 군 이렇게 살아 돌아와 반갑군. 나는 일년 전 너무나도 급박한 월남 전황이기에 고향의 부모님 요청도 있었고 해서 극구 말렸는데 대단한 고집이야. 이제 무사히 왔으니 자네 의 의지가 관철됨 셈이지, 하여튼 반갑네”
“죄송합니다. 저의 안위를 걱정해 주셨는데 똥 고집만 부린 셈입니다. 전선 없는 그곳의 상황은 어려운 점이 많았습니다. 모두가 도와주시어 살아 왔습니다”
“도대체 월남이라는 나라는 현지에서 보니 어떤 나라든가”
“한 마디로 외세는 물러가라. 전쟁은 끝내자. 이념을 떠나 민족감정만 앞세운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고마워 하는 것 같지도 않고요”
“그래, 그렇다면 큰 일이군. 우리의 젊은이들이 많이 죽었다는데 죽음의 의미가...”
“사실 그게 문제입니다. 저희보다 전투부대가 오고 부터 무리한 소탕작전과 그에 따른 인적 손실은 컸습니다. 경험 없고 무리한 공명심도 작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래 전쟁이란 무모한 반란이지. 이기적이고 지도자나 지휘관은 자신의 업적으로 치부하기도 하고 그래서 인류의 적이요 평화의 적이라 하지 ”
“전투에 참가한 전우얘기는 전투중에 전우가 쓰러지만 악이 받친다는 거죠. 눈앞의 모든 것은 적으로 간주하고 순간적으로 눈감고 방아쇠를 당긴다고 합니다”
“그래 전쟁이란 그래서 살생공장이란 말도 있지. 월남전쟁이 끝나면 얼마나 월남도 우리도 얼마나 좋겠는가?”
그분은 국제법 학자이기에 전쟁에 대하여 관심이 많았다. 자유월남의 평화정착이란 어렵겠다고 말씀도 있었다. 인호는 자신이 전쟁에 참여했다는 사실에 괴로워하고 있었다. 살아서 돌아와 전쟁과 평화란 무엇인지를 알게되었고 무모한 전쟁은 고귀한 생명을 앗아간다는 사실이다. 서울에서 하루를 보내고 고향을 찾았다.
할머니와 부모님은 말할 수 없는 기쁨이었다. 온 마을 사람들이 찾아와 살아 돌아 온 것이 신기한 듯 반기고 있었다. 그것은 이웃 마을에 월남에서 전사한 사람과 부상자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부모님께 큰절을 올리니 할머니는 덩실덩실 춤을 추시며 손자의 생환을 기뻐하시었다. 고향의 마을 사람들은 돈도 많이 벌어온 줄로 알고 있었다. 사병이 무슨 돈을 번단 말인가? 워낙 가난하게 살았기에 월남에서 받은 전투수당은 적은 돈은 아니었다. 그러나 실제 병사들에게 지급되는 수당은 소액이었다.
인호는 휴가를 끝내고 제대를 하였다. 제대말년 참전으로 40개월의 복무를 한 셈이다. 일년 여 더 복무한 기간에는 월남 참전1년이 포함되었기에 인호로서는 인생에 있어 큰 경험을 한 것이다. 돈으로도 살수 없는 값진 경험이었다. 제대 후에도 월남의 상황에 대하여 계속 관심을 갖고 있었다.
참전 10년째 월남은 종전의 기운이 있었다. 인호가 예견한데로 미국과 한국이 손을 떼면 그때가 종전이었다. 한국전보다 10배에 가까운 전비가 소모되었고 전사자 또한 한국전보다 더 많이 죽었기에 당초의 참전반대의 미국여론과 국제적 비난에 굴복한 것이었다. 한국군은 연인원 35만 명 참전과 전사자 6천 여명을 내었다. 중경 부상자는 사망자의 3배의 숫자다. 종전에 따른 월남의 변화에 대하여 국제평화연대에 근무하고 있는 인호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이교수의 제자로 국제문제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었다. 인호와는 평소에도 월남전에 대하여 관심을 얘기하곤 했었다. 월남전으로 인한 한미관계며 동남아 정세와 한국의 위상에 대하여 말한 바도 있었다. 이제 막상 종전이 되니 할 얘기가 많아졌다.
“인호, 오랜만이군. 보도 봤지? 결국 자네나 내가 주장한데로 그렇게 끝장이 났군”
“그래, 그렇게 될 것이라 했지만 막상 공산화로 통일이 된다니 허전하고 또 참전군인들의 위상은 어찌 될 것인가?. 그것도 문제고..”
“인호를 비롯한 참전자는 패잔병 신세지. 미국과 한국도 패전국이나 마찬가지고.”
“이렇게 되면 월남에 평화 운운한 게 허상이었어. 이제 적국이 되었고 결국 강대국 놀음에 놀아나 청부전쟁이니 용병이니 해서 위상이 추락했었지”
“월남이 사회주의로 통일이 되었지만 호치민이 이끄는 세력은 그 오랜 세월동안 외세와 싸워 민족의 체면을 세웠다고 대단한 자부심이 커 있지”
“맞아, 내가 참전했을 때 월남인에게 들은 얘긴데 호치민은 남북이 모두 존경하는 민족의 지도자요 월남 지도자들은 모두 미 제국주의의 앞잡이들이라고 하더군”
“자유진영으로 통일이 되었다면 엄청난 전후복구사업에 한국이 톡톡히 재미를 볼텐데 물 건너갔군”
“맞아! 그러나 월남 참전으로 박 정권은 어려웠던 경제난을 이겨가고 국군현대화와 실전의 경험을 쌓은 일들은 큰 혜택이요 대단한 성과지. 그래서 정권안보도 튼튼하게 하고”
“그런데 전쟁의 뒤에는 항상 전사상자와 민간인들이 있기 마련인데 월남에서 근간 한국군에 희생된 양민들이 정부에 항의를 한다는 보도였어”
“나도 그 문제가 제일 가슴 아프고 앞으로 계속 제기될 문제라 생각하네. 우리도 일본과 미국이 저지른 전쟁의 상처에 대하여 항변하고 있듯이 말야”
끝일 줄 모르는 두 사람의 대화는 자정이 가까워 오고 하룻밤을 함께 할 정도였다. 인호는 사라지지 않은 월남의 일들이 변화가 있을 때마다 다시 기억에서 되살아나곤 했다. 누구나 자신이 경험했던 특별한 일들은 오랫동안 각인되어 사라질 줄 몰랐다. 열 살의 한국전과 4.19며 월남 참전이며 그리고 월남의 패망과 통일들이 그것이다. 고향을 찾았을 때의 일이다. 그렇게 열성적으로 위문 편지를 보내고 답장했던 지영이는 인호가 서울로 떠나온 후 자연스럽게 해어졌다. 가끔 생각났지만 그러나 그들의 소식을 캐고 다닐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들이 행복하기를 바랬다. 좋은 사이로 좋게 해어졌다. 이제 중년주부가 되었을 그였다. 인호는 가끔 고향을 찾는다. 하루는 초등학교 친구가 자기가 좋아하는 카페가 있다고 했다. 분위기도 그곳의 마담도 상냥하며 흘러나온 음악도 클레식 위주라고 했다. 학교시절 합창단에 함께 하고 음악반에서 함께 활동했던 친구였다. 도심 변두리에 위치했고 한적한 곳이었다. 간판은 나폴리였다.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인호는 본 듯 한 얼굴에 주춤했다. 학생시절 그러니까 월남에서 귀국하여 단 한번 만난 사실이 있었던 지영이었다. 엽차를 내면서 눈이 마주쳤다.
“아니 지영씨가 아니요?. 이렇게 만나다니 반갑습니다.”
“인호씨군요. 어떻게 이곳까지 오셨나요. 흰머리가 많으셔 몰래 보겠어요”
“그래요. 불혹의 나이를 넘은 지 오래죠. 더욱 흰머리도 늘고요”
“저도 많이 늙었죠. 그러니까 15년 전 뵙고 참 오래 되었네요”
친구는 일이 있다고 자리를 피해 주었다. 서로는 헤어지고 난 후에 대하여 말하고 있었다. 먼저 지영이가 말문을 열었다.
“그 옛날 인호씨를 사랑했었지만 인호씨가 서울로 간 후 자연스럽게 헤어졌지요. 저는 방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비 오는 날이었어요. 혼자 비를 맞고 걸었는데 군인이 우산을 받혀주었지요. 그래서 같이 걷고 차 한잔 을 하면서 얘기를 나누다 음악을 좋아한다기에 마음을 합했지요.”
“그랬군요. 지금 애가 몇이시고 그분은 어떤 일을 하시나요.”
“애는 둘이에요. 큰애는 기악을 둘째는 성악을 한답니다. 그 이는 제대하고 교사를 하였는데 지금은 병으로 퇴직하고 휴양을 하고 있어요.”
“애 아빠가 지병이 있다니 안타깝군요. 어서 건강을 찾으시면 좋겠군요”
이 사이에 지영이는 토스카 중 아리아 곡을 들려주고 있었다. 고전음악과 우리 가곡, 그리고 이태리 민요도 들려주었다.
“인호씨는 지금도 음악을 하시나요. 지금 들리는 곡 생각나시죠. 많이 부르셨던 곡이지요. 전 하루에도 몇 번씩 이 곡을 듣곤 한답니다.”
“그래요. 모두가 제가 좋아하고 자주 불렀던 곡들이네요. 생각하면 그때가 제일 좋았던 시절이었어요. 천진난만한 그때 청순한 시절이었죠. 그런데 부군의 병명이..”
뜻밖의 질문에 당황하면서도 차분하게 답하고 있었다. 결혼하기 전 만났을 때는 고등 군사반 요원으로 상무대에 왔었다. 결혼 후에 남편도 월남에 전투부대로 참전했다. 몇 번의 고비를 넘어 살아 귀국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중학교 교사로 근무했는데 피부에 이상이 나타나고 그리고 합병증이 생겨 교단에 더 이상 설 수가 없어 퇴직했다는 것이다. 보훈병원에 치료를 받고 약 또한 주기적으로 복용하고 있으며 고엽제 후유증 전쟁환자로 인정받았다는 것이다. 그래 살림을 꾸리기 위해 본인이 할 수 없이 카페를 차렸고 음악을 사랑해 고전음악 감상 실처럼 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손님은 대부분 점잖은 분들이고 처음에는 견디기 어려웠지만 차츰 세월이 가면서 잘 견디어 내고 있다고 했다. 여기까지 지영이의 얘기를 듣고 있던 인호는 함께 참전한 사람으로 미안하기도 한 생각에 위로의 말을 하고 있었다.
모처럼 옛 우정의 여인을 만나고 귀경하면서 여러 생각이 떠올랐다. 그렇게 자신에게 관심과 사랑의 손길을 주었는데 너무 무관심하였다는 것과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지금도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은 아직도 연민의 정이 남았다고 생각하니 더더욱 죄스러웠다. 그 옛날도 우연히 만났고 지금도 우연히 만난 여인의 남편이 함께 한 참전 전우였기에 아픔으로 고행을 하고있다니 가슴이 아팠다. 세상은 좁게만 하였다.
세월은 흘러. 월남이 통일된 후 적국이었던 우리와 수교가 되었다. 파월 장병들은 큰짐을 벗은 기분이었다. 그런 대신 참전 때부터 일고있던 양민학살 사건을 정식으로 제기를 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동안은 그들이 오랫동안 참고 있었다. 월남 현지의 위령비와 증언과 청룡 중대장의 양심고백도 있었다. 국제연대의 친구가 다시 빈번히 물어왔다. 실제로 월남에서의 양민에 대한 학살이 어떻게 자행되었는가 묻고 있었다. 마침 신문에서 제기되고 속속 사실 확인되어 국제연대는 본격적으로 이 문제를 다를 태세였다.
“글세, 나는 비둘기부대에서 일어났던 사건은 여인강제추행 하려다 반항해서 다리에 총상을 입힌 사실밖에 모르는데 청룡과 맹호 백마 등 전투부대의 상황은 구전으로만 들었지. 문제는 베트공 마을 공격과 첩자 또는 동조자들에 대한 살상이 많았다는 것 사실이야. 우리 군도 베트공에게 많이 죽고 하면 열 불이 날 일이겠지”
“그렇다고 양민을 우리 군인이 죽은 숫자만큼 학살했다는 항의가 있는데 너무하지 않았나. 아무리 전쟁이지만 무고한 양민을 그렇게 많이 사살했다는 게 사실이라면 당사자도 정부도 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생각해”
“나도 하나의 공범이지 내 총으로 행동하지 않았지만 참전군인들이 저질렀다는 것은 모두가 책임이고 그래서 나는 월남에 평화구축을 위해 갔다가 학살이나 하고 평화를 깨는 꼴이 되었으니... 그래서 내가 후회하고 있는 것이네. 정말 괴로워”
“참으로 아이러니 하게도 우리는 종군위안부다 노근리다. 최근에는 매향리까지 항의한 처지인데 한편으로는 똑같이 나쁜 일을 저질렀다는 사실, 그러니까 똥 묻은 개가 재 묻은 개 나무라는 꼴이지. 베트남정부보다 당사자 유족들이 당연히 항의하겠지”
“그래서 나도 개인적으로 사죄하고 그때 젊었을 때 뭘 모르고 참전한 잘못이었지. 이렇게 잘못된 전쟁이었다면 지원하지 안 했을 거야. 이제 절실하게 후회하고 있다네”
월남이 통일되고 평화를 얻고 있다. 우면 산 총소리는 멈추었다. 어쩌면 우리 전방에도 총소리가 멈출지 모른다. 전쟁이 없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다시 한번 월남에서 죽은 전우와 양민들의 명복을 빌며 인호는 자신의 지난 날 행동에 남루한 후회를 하면서 산을 내려왔다. 비둘기 한 쌍이 산자락을 평화롭게 날고 있다.(끝)
|
No, 110
월남의소설 
